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경남의 섬이야기
칠천도 맹종죽의 푸름에 꽂히다
   
 

섬여행을 간다는 건 낯선 외국을 가는 것보다 설레게 한다. 거제 본섬과 연육교로 연결된 칠천도(漆田島)로 가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거제는 10개의 유인도와 52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섬이다. 거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칠천도가 우리의 목적지.

   
맹종죽테마파크.

구불구불 2차선 도로를 따라 거제시 하청면에 들어섰다. 푸른 대나무가 큰 숲을 이룬 맹종죽테마파크가 눈에 들어왔다. 칠천도의 연육교 바로 지척에 있는 맹종죽(孟宗竹) 군락지를 그냥 스쳐갈 수 없었다. 거제시 하청면은 대나무 중 가장 크고 굵은 맹종죽이 시배된 곳이다. 맹종죽은 중국이 원산지로 동죽(冬竹), 죽순죽(竹筍竹)이라 불린다.

1921년 농림 선각자 신용우 선생이 일본 규슈에서 세 그루를 거제도에 가져온 것이 그 시초다. 맹종죽테마파크로 성큼 들어섰다. 발밑의 대나무들은 연둣빛으로, 쭉 뻗은 가지 위론 초록빛으로 성글어 있었다. 발밑으로 툭툭 떨어지는 대나무 잎을 밟으면 걷는 맹종죽테마파크의 오솔길은 온몸으로 느낄 정도로 청량했다.

전망대에 이르러 푸른 물길이 칠천도와 서로 얽힌 풍광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거제의 맹종죽이 세상에 주목 받은 것은 2008년 거제 칠천도 곡천마을의 맹종죽이 꽃을 피웠을 때다. 대나무꽃을 ‘신비의 꽃’이라 부른다. 보통 60~120년 만에 한번 피기에 대나무꽃을 보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인데, 거제 칠천도에 대나무꽃이 핀 것이다.

맹종죽테마파크에서 땀을 닦고 다시 칠천도 연육교로 갔다. 2000년 개통된 거제시 하청면 실전리와 칠천도의 어온리를 잇는 다리다. 우리 일행은 연육교를 건너 장곶마을을 중심으로 좌측 편으로 일주를 시작했다. 장곶마을 초입 무궁화가 멋들어지게 핀 집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급히 차를 세워 무궁화 핀 담장으로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에 휘날리는 무궁화 사이로 용의치가 눈에 들어온다. 다시 장곶고개를 넘어 달렸다. 칠천도는 3개의 리와 10개의 마을이 있다. 무엇보다 칠천도의 마을은 옥녀봉을 중심으로 바닷가에 형성됐다. 우리나라의 산이름 중 3위에 오를 정도로 옥녀봉(玉女峰)이라는 산 이름이 많다.

거제 칠천도의 주산도 옥녀봉이다. 산이름을 처녀의 이름을 딴 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스위스도 있다. 그곳의 아름다운 산 ‘융프라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 뜻은 ‘젊은 처녀’로, 독일어 ‘Jung’은 영어로 ‘Young’이고 ‘frau’는 ‘woman’을 뜻한다. 칠천도의 옥녀봉도 여인이 숨 쉬는 산으로, 옥처럼 마음과 몸이 정결한 여인을 뜻한다. 여인의 산을 품은 칠천도 가슴에 오늘은 푹 안길 작정이다.

칠천도는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이름이며 옻나무가 많은 지역이었다. 칠천도와 가조도에 검은 소(黑牛)와 붉은 말(赤馬)을 방목한 목장이 있었는데, 검은 소가 방목된 모습이 옻칠을 한 듯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방목한 소떼의 식수원으로 7개의 하천이 있다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구불구불한 왕복 2차선을 달리다보면 하청면 연구리 옥계마을 동끝산 꼭대기에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이 언덕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관은 판옥선 형태다. 칠천도 해협은 임진왜란 동안, 조선수군의 아픔이 숨쉬는 ‘칠천량 해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조선실록에 따르면, 1597년 7월 16일 원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은 256척의 전함과 수군 5천500여 명이 칠천량해전에서 전몰했다.
이순신 장군을 모함했던 원균도 칠천량해전 출전을 꺼렸다. 하지만 도원수 권율의 곤장에 어쩔 수 없이 출전하게 되었다. 땅에 떨어진 지위관의 사기로 패배가 예견한 된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은 궤멸당한다. 다행인지 경상우수사 배설의 이끌던 12척만이 탈출에 성공해 명량해전을 이끌 수 있는 근원이 됐다. 당시 패장 원균은 지금의 통영 춘원골에서 왜군들에 의해 목이 베여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패전의 기록이 칠천량해전공원에 되살아났다. 거제도는 승전과 패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섬이다. 임진왜란 첫 승전지인 옥포대첩을 기리는 ‘옥포대첩공원’과 임진왜란 첫 패전의 기록을 간직한 ‘칠천량해전공원’이다. 역사는 기록으로 후손들에게 좋은 점만 보이는 것보다 동전의 양면을 그대로 남기는 것도 교훈일 것이다.

전쟁의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칠천도는 역사의 굴곡과 거주민의 애환이 서린 곳. 동끝산 자락의 옥계마을 반대편 해안으로 내려가면 잔잔한 물결과 고운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옥계해수욕장과 마주할 수 있다. 해수욕장 앞으로 일본군이 주둔했다는 씨릉섬이 웃는다.

   
 

칠천량해전 공원을 빠져나와 물안마을에 도착했다. 이 마을의 주산이 있다. 여인이 베틀에 베를 짜는 형태라 산의 이름을 ‘베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물안이란 마을 지명도 베틀에 물을 뿌리 듯 산에 물안개가 자주 낀데서 지명이 유래했다. 물안개가 자주끼는 안쪽 마을이란 한자식 표기 물안(勿安)이 뜻이 아니라 표기로 옮겨진 부분이 억지스럽다.

물안마을 옆, 옆개 해수욕장이 보인다. 이곳은 고운 모래로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 칠천도의 명소다. 이곳의 고운 모래가 칠천도의 부드러운 해안선과 맞물려 있다. 작지만 황톳빛 모래 벨트가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모래가 곱고 물이 잔잔한 해변에서 섬일주도로를 따라 다시 달렸다. 태양이 눈이 시리도록 눈부시다.  

   
 

 

 

 

                                 
/ <내가 본 진짜 통영> 최정선 작가· 류혜영 기자 공동 취재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류혜영 기자  hannamilbo@hanmail.net

<저작권자 © 한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류혜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