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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 절벽에 서도 포근한 섬 ‘욕지도’출렁다리·비렁길·가는 곳 마다 탁트인 절경
   
 

10월의 여행지로 어느 곳인들 좋지 않겠냐마는 10월엔 역시 통영 욕지도의 풍광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한려수도의 끝자락에 흩어진 39개의 섬을 아우르는 욕지면의 본섬 욕지도는 통영항에서 뱃길로 32㎞쯤 떨어진 제법 먼 길이다. 그러나 배편은 통영의 어느 섬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데 욕지도 배편으로 연화도, 우도, 상노대도, 하노대도, 두미도 등도 갈 수가 있다.

욕지도는 면적이 14.5㎢에 해안선의 길이가 31㎞나 되어 걸어서 섬 한바퀴를 일주하기엔 다소 벅차기 때문에 차를 이용하는 것도 이 섬을 즐기기에 좋은 방법이다.

먼저 동항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노적마을 쪽으로 가다보면 북쪽으로는 크고 작은 섬들이 정감있게 들어 앉아있고, 남쪽으로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노적에서 혼곡 간은 이 섬의 비경을 볼 수 있는 비렁길인데 이 곳은 펠리칸바위라 이름 붙여진 수직 절벽 사이에 출렁다리가 놓여 있어 이 곳에 이르면 바다와 바위, 파도의 풍광에 압도된다.

전망대와 데크를 따라 해안로를 걸어 내려오면 길은 험하지 않으면서도 깎아지른 해안절벽과 망망대해를 감상할 수 있다.

다시 왔던 길로 들어서게 된 일행은 노적마을로 가지 않고 새천년 기념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길엔 억새와 쑥부쟁이가 바람에 춤을 추며 응원을 보내 다소 먼 길이지만 지루하지 않다.

   
 

곳곳에 욕지의 명물 고구마들은 벌써 추수를 마치고 가을 볕에 나와 보송보송 몸을 말리고 있다.

예전만큼 고구마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효자 농산물이다. 욕지도는 고구마 뿐만 아니라 감귤, 마늘, 고추, 양파 생산도 활발하다. 또한 한때는 어업전진기지가 될 정도로 어업이 활발했지만 최근에는 멸치, 장어 양식, 전복·미역 양식 등에 한정되어 있다고 한다.

새천년 기념공원에 닿으면 욕지도가 고향인 문장가 김성우의 ‘돌아가는 배’ 문장비가 있다. 고향 욕지도를 그리워 하며 지은 동 제목의 글을 기념하며 만든 이 문장비는 섬주민들과 통영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만들었다니 예향의 도시 시민다운 면모가 엿보인다.

욕지도의 역사는 소가야의 칠성지에, 소가야시대 9대 왕계(서기44년∼)에 걸쳐 다스린 2현 6향 10부의 18주와 20개 도서 중에 욕지도, 연화도가 포함되어 기록되어 있어 그때부터 행정구역으로 취급됐다고 한다. 또한, 경상남도 지정 기념물 제27호인 신석기시대 욕지도 패총이 있고, 삼국시대의 유물이 지금도 출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부터 삶의 터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시대때는 일본과 부산, 거제의 어업·교통 등의 요충지로 매우 융성하게 발달되기도 했다.

욕지도(欲知島)는 예전에 사슴이 많아, 녹도(鹿島)라고 불렸던 섬이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욕지항(欲知港) 안에 있는 섬이 거북이가 목욕하는 형상 같다 하여 욕지도(浴地島)라 불러졌고, 시간이 지나고 와전되며 욕지도(欲知島)로 바뀌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가장 신빙성 있게 회자되는 것은 불교와 관련된 전설이라고 한다.

백여년 전, 어떤 노승(老僧) 이 시자승(侍者僧)을 데리고 지금의 연화봉에 올랐는데 그때 시자승이 “스님 어떠한 것이 도(道)입니까?”라고 노승에게 묻자 노승이 지금의 욕지도를 가리키며 “欲知‘道’觀世尊‘道’”라고 했단다. 해석하자면 ‘도를 알고자 하거든 세존의 도를 바라보라’이다. 여기서의 ‘道’가 ‘島’로 바뀌어, 지금의 욕지도가 됐다는 설이다.

욕지도는 사시사철 언제 찾아와도 편안하게 쉬어 갈 수 있는 섬이다. 등산과 낚시, 바다 관광과 해수욕 모두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류혜영 기자  hannamil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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