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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 핏빛 서러운 유배의 섬 노도
   
▲ 노도호를 타면 노도가 고향인 최옥연 작가의 수필집이 맨 먼저 방문객을 맞는다.

서포 김만중·후송 류의양·남구만 등의 유배지
김만중 초옥터·허묘·유허비 등 한적한 힐링지


남해에서도 한참을 더 차를 타고 들어가는 외진 어촌마을, 남해 상주면 양아리 벽련마을에 힘겹게 닿으면 유배의 섬 노도가 바다 위 외로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다.

주말인데도 한가한 선착장은 고독감마저 들 정도였다. 배 시간이 되자 아침 일찍 뭍에 나왔던 섬마을 늙은 촌부 두 분만이 양손 가득 보따리를 들고 배에 오른다. 배에는 노도가 고향인 최옥연 의 수필집이 망향의 정을 먼저 느끼게 해준다.

옛날 배에 쓸 노를 많이 생산했다 하여 노도(櫓島)라 부른다는 이 섬은 구운몽, 사씨남정기의 작가 서포 김만중이 56세의 일기로 유배 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던 곳으로 더욱 유명하다.

또한 기묘사화(1519년 훈구파에 의해 신진 사류가 화를 입은 사건)로 유배당한 자암 김구 선생이 13년간의 기나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4대 서예가로 불리는 자암선생은 남해를 찬양하는 경기체가 ’화전별곡’을 지었다.

그리고 조선 후기의 문신이었던 후송 류의양 또한 영조 47년(1771년)에 삭탈관직 당하고 서인이 되어 남해로 유배당했다. 그때 류의양은 남해의 유적, 절경, 세시풍속 등을 기행문체로 쓴 ‘남해문견록’을 남기기도 했다.

남해는 이 외에도 주로 금산의 절경을 노래한 한시를 많이 쓴 남구만, ‘남천잡록’의 저자 김용 등 많은 유배객이 다녀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양반소설의 대표작 ‘구운몽’으로 유명한 서포 김만중은 노도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 등을 집필해 현재 남해군은 이곳에 유배문학관 등 ‘문학의 섬’ 개발에 나섰다.

   
▲ 서포 김만중 초옥터.

이 곳에는 서포가 유배생활 하던 초옥터와 유허비, 허묘, 서포가 직접 파 놓았다는 샘 등이 있어 섬 구석구석을 천천히 걸으며 조선시대로 조용히 걸어들어가는 느낌을 받는다.

현재 16가구에 43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노도는 그 크기마저 아담해 눈 앞에 보이는 한 길만 따라 걸으면 된다. 아직 섬 둘레로 길이 않나 서포의 초옥터와 허묘까지 다녀오면 노도 구경은 다 한 듯 하다. 하지만 그 어느 섬에 다녀 왔을 때보다 제대로 된 힐링을 했다고 생각이 든 건 사람의 손길보다 자연의 손길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바람에 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서포의 초옥터로 향하는 길은 가을을 맞은 곡식들이 인간의 손을 타지않고 풍성하게 차려져 있어 들짐승들의 잔치상처럼 마음마저 풍요로워진다.

핏빛 서러운 동백은 한여름 고통을 이겨내고 꽃처럼 붉은 자식들을 출산시켜 놓았다. 산고의 눈물이 가을볕에 반짝반짝 빛난다. 초옥터를 둘러싼 동백나무들이 유배시절에도 있었다면 그나마 외롭고 고단한 유배생활로 헛헛한 마음이었을 유배인들에게 위안을 주지 않았을까.

   
▲ 서포가 팠다는 샘의 주인이 바꼈다.

초옥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서포가 팠다는 샘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이제 그 주인이 바뀌어 민물게의 삶터가 되고 산새들의 우물가가 됐다. 그나마 한산한 섬마을에 복닥복닥 즐거운 풍경을 마주해 개발에 의해 정비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한결 밝아진 마음이 들었다.

선착장 근처에 올망졸망 집들이 모여있던 마을로 돌아오니 어느새 동네 할머니들이 나무그늘에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관광객마저 뜸하니 낯선 나그네가 반가워 한참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분들은 젊은 시절 이 섬에 시집와 평생을 사셨다며 이제 육지에서도 한 번 살아보고 싶다며 나그네에게 되려 하소연이다. 얼마나 외졌으면 유배지가 되었겠나.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사셨으니 그런 마음이 들고도 수백번은 들었을 거란 생각이 드니 마음 한켠 애잔해졌다. 

“서포 선생의 유배가 세속의 욕망과 갈등들의 엉킴을 풀지 못하고 현실에서 밀려난 운명이라면, 내가 노도에서 태어난 것은 숙명이다. … 노도는 슬픈 절망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그것을 내려놓을 방법을 찾으러 오기도 한다” - 최옥연 저, ‘노도 가는 길’ 중

최옥연 작가가 자신의 고향을 이렇게 기술한데는 그 이유가 있었다. 관광지가 아닌 제대로된 힐링을 하고 싶다면 처연함 서린 남해의 노도가 제격이다.

이 취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 사업비를 지원받았습니다.

류혜영 기자  hannamil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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