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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吏讀)로 풀어보는 경남 지명이야기 <2>칼럼리스트 김규봉
   
칼럼리스트 김규봉

이두는 비록 그 표기는 한자의 음과 훈을 취하고 있으나, 그 원리적 운용은 훈민정음과 같이 소리글자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두는 대부분 우리말 어순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아래는 MBC인기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던 가락국의 마지막 왕자이자, 저 유명한 관산성 전투를 통해 백제 성왕의 목을 벤 신라 대장군 김무력(金武力, 흥무대왕 김유신의 조부) 대한 김해김씨 삼현파 숙종병인보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甲戌濟王聖 自將十萬來圍三城 良州公南攻大元帥 月峯下作藏春三十舍 濟?果海圍亂王陣 公聞怒 以匹馬單創 擊破濟王滅十万兵

위의 기록은 삼국사기 진흥왕조에도 등장하는 내용으로, 6세기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의 판도를 뒤바꾼, 진흥왕이 한강유역을 넘어 고구려 땅인 함경도 지역으로 진출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관산성 전투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백제 성왕이 전사할 만큼 치열했던 관산성 전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는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위의 기록에서 재미난 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바로 이두를 통해서다.

만약 위의 글을 한자 자체의 뜻만으로 해석한다면 진흥왕의 명을 받고 충북 옥천지역으로 출동한 김무력장군이 한가롭게 영채를 30동이나 짓고 있었고 해석된다. 이는 긴박한 전후사정상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이두로 해석하면 전혀 색다른 문장이 된다. 문제의  作藏春은 봄에 영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이두로 읽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저(作) 감(藏) 춘(春)지의 형태로 읽히게 되는 것이다(아래 참고자료 참조)

위의 글을 이두로 재구성하면 ‘김무력장군이 군대를 월봉하에 바짝 감춘지’가 되어 비로소 올바른 문장 해석이 가능해는 것이다. 여기서 月峰(월봉)은 이두로 읽으면‘달뫼’로 읽어지며, ‘달뫼’가 다시 한자화 되면서 鷄山(계산)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토대로 관산성이 위치한 충복 옥천 지역의 인근을 살펴보면 충남 금산군 추부면 성당리와 충북 옥천군 군서면 금산리, 행정리, 사정리의 실제 鷄山이 위치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실제 이 곳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백제성왕이 전사한 유적지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 숙종병인보에 기록된 이두문을 통해 신라와 백제가 국운을 걸고 싸웠던 관산성 전투의 단편적인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김무력장군은 백제성왕의 군세가 대단한 것을 알고 직접 전면전을 펼치지 않고 현재의 충북 옥천군 계산에서 매복하고 기다렸던 것이다. 바로 연전연승으로 인해 교만해진 백제의 심리를 철저히 이용한 것이다.

이처럼 역사서에 기록된 이두는 역사학의 블루오션이나 다름없다. 아직도 깨쳐지지 않은 이두들이 역사서 곳곳에 숨어 있으며, 우리가 쓰고 있는 말한마디, 사투리하나, 집안의 족보 곳곳에 숨어 있다.

(참고자료 : 우선 조선중기에 해당하는 15세기 무렵에는 용비어천가와 두시언해에 藏의 훈으로 ‘?초’가 보이나 이는 ‘?초’의 고형(古形)으로 볼 수 있다.[전몽수, 고어연구초(3), 『한글』51호]또 ‘藏’을 ‘?초다’ 혹은 ‘?초다’로 쓰였고, ‘軍士(군사)? ?초고[伏師]’라는 용례를 통해 그 쓰임새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유창돈,『어휘사연구』(이우출판사,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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