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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의 요새지이자 도읍지‘거창(居昌)’김규봉 (논설위원/지역역사연구가)
   
▲ 김규봉 (논설위원/지역역사연구가)

덕유산, 가야산, 황석산 등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둘러싸인 거창지역은 대표적인 산성인 거열성(居列城)을 비롯한 21개의 크고 작은 산성이 축조되어 있을 만큼 지리적 군사적 요충지. 원래는 ‘거열(居列)’ 혹은 ‘거타(居陀)’로 불렸으나 신라에 편입되면서 ‘거열군(居烈郡)’이 되었고, 이후 신라 경덕왕 대에 ‘거창군(居昌郡)’으로 불리기 시작.

남부권의 대표적인 산으로 꼽히는 덕유산과 가야산 그리고 황석산 등 해발 1,000m가 넘는 험준한 산악지형으로 둘러싸인 거창지역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그 지리적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서 가야, 백제, 신라 간의 치열한 각축이 벌어진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를 말해주듯이 이 지역에는 무려 21개에 달하는 크고 작은 성이 축조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렇게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를 가장 먼저 장악한 세력은 대가야세력이었고, 이후 6세기경에 이미 한 번 투항했다가 다시 반란을 일으킨 대가야를 이사부와 사다함을 내세워 무력 정벌한 신라가 이 거창지역을 차지하며 백제의 동진을 막는 최전선으로 활용하게 된다. 그러나 7세기에 이르러 백제가 동진하며 당시 김춘추의 사위인 김품석(金品釋)이 지키고 있던 대야성을 함락시켰고, 이와 함께 거창지역은 백제의 세력권으로 편입되었 것으로 추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백제의 거창지역 지배는 648년 신라의 명장 김유신장군이 대야성을 함락시키기 전까지 유지되게 된다.

이처럼 6세기에서 7세기 사이에 그 지리적,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자주 주인이 바뀐 거창지역은 의외로 지명 변천이 자주 되진 않았다. 애초 가야세력이 장악하고 있던 무렵에는 ‘거열(居列)’ 또는 ‘거타(居陀)’로 불렸고, 이후 신라에 편입되었을 때는 ‘거열군(居烈郡)’으로 불리다가 757년 경덕왕 16년에 ‘거창군(居昌郡)’으로 개칭되었다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물론 조선시대인 1414년부터 1422년에는 잠시 '제창(濟昌)‘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거제군에 왜구 출몰로 인하여 백성의 피해가 극심하자 이를 보다 못한 태종이 거제도의 주민들을 몽땅 거창지역에 이주시키면서 불리게 된 한시적인 지명이었다.

거창의 옛지명인 거열 혹은 거타는 현지 향토사학계에서는 크게 일어날 밝은 곳, 매우 넗은 들, 넓은 벌판, 즉 넓고 큰 밝은 들이란 뜻에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거열(居列)’은 ‘居’를 음차하여 ‘거’로 읽고, ‘列’을 훈차하여 ‘벌일 열’에서 ‘벌’을 취한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거열(居列)’은 큰 벌판이나 큰 들을 칭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지명이 바로 ‘거타(居陀)’인데 역시 ‘居’는 음차하여 ‘거’로 ‘陀’을 훈차하여 ‘비탈 타’에서 비탈을 취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비탈’의 고어는 ‘빌’ 또는 ‘별’이다. 그러므로 ‘거타(居陀)’  역시 거벌과 유사한 음가를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신라시대 어느 시기에 ‘거열(居列)’의 표시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거열군(居烈郡)’으로 바뀌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이를 757년에 경덕왕이 ‘열(烈)’의 여러 훈 중에서 ‘빛나다’,‘밝다’,‘아름답다’ 등을 취해 이와 대응되는 ‘창(昌)’으로 바꾼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거열(居列)’의 이두표시가 ‘거벌’ 또는 ‘거발’이라는 점이다. 중국 의 대표적인 사서인 ‘수서(隋書)’ 및 ‘북사(北史)’에 동이열전에 보면 백제의 수도 중 한 곳으로 ‘거발성(居拔城)’이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적으로 현재의 충남 부여를 지칭한 것이 아닌가 보고 있다. 즉, 다시 말해서는 백제가 자신들의 수도를 지칭하는 말로 ‘거발성’으로 썼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거창의 옛지명인 ‘거열(居列)’의 이두표기인 ‘거발’ 혹은 ‘거벌’ 역시 수도의 옛표현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대가야 혹은 그 이전에 거창지역에 자리하고 있던 가야세력은 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 주지의 사실이고 보면 거창지역 혹은 후기 대가야세력이 자신들의 수도를 거창에 두었을 수도를 백제의 경우를 참고해서 ‘거발성’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대야성의 진정한 위치는 합천지역이 아니라 거창지역에서 찾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이에 가장 부합하는 성은 거창의 대표적인 산성인 ‘거열성(居列城)’이 아닐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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