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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이 선택한 청정(淸淨)의 고장‘함양(咸陽)’김규봉 (논설위원/지역역사연구가)
   
▲ 김규봉 (논설위원/지역역사연구가)

우리나라 민족의 영산 중 하나인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이 굽어보는 곳에 위치한 함양. 예로부터 자연풍광이 빼어나고 수려해 선비와 유학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은 탓에 선비고장을 언급할 때는 의례‘좌안동, 우함양’이라고 불려. 또한 100여개의 정자가 자리 잡고 있어서 정자(亭子)의 본향 이라고 불리기도.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남덕유산 사이에 형성된 분지(盆地)에 자리 잡은 함양은 예로부터 그 자연 풍광이 수려해 수많은 선비와 유학자들이 거쳐 간 곳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함양에는 이곳을 찾은 선비와 유학자들이 지리산과 덕유산의 풍광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키우기 위해 세운 정자(亭子)가 무려 100여개에 달해 가히 정자의 본향(本鄕)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또한 신라의 문장가 고운 최치원, 동방오현이라 불리는 일두 정여창(1450~1504), 김종직(1431~1492), 유호인(1445~1494), 박지원(1737~1805)등의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쟁쟁한 당대 학자들이 함양에서 관직생활 또는 유했던 탓에 선비문화를 언급할 때는 의례 ‘좌안동, 우함양’이라 일컬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함양은 그 자연풍광만 빼어난 것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함양은 남으로는 낙남정맥(洛南正脈)의 출발점 지리산 그리고 북으로는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뻗어 나와 솟은 덕유산이 위치하고 있다. 이 두 험준한 산줄기는 그 지형적 특성 때문에 삼국시대 전후로 자연스럽게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르는 국경선 역할을 해왔고, 그런 탓에 그 가운데 분지에 위치한 함양지역은 신라와 백제를 오가는 주요 통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함양은 백제의 전진기지 남원의 교룡산성과 신라의 전진기지 거창과 합천 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야성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거대한 국경검문소 같은 역할을 했었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그런 만큼 함양지역은 오늘날의 휴전선처럼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1급 경계태세 유지 지역이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함양지역의 최초 지명은 ‘속함군(速含郡)’ 또는 ‘함성(含城)’으로 불렸다. 그러던 것이 경덕왕 16년인 757년에 ‘천령군(天嶺郡)’으로 개명되어 불리다가 고려 성종 2년인 983년에 ‘허주도단련사(許州都團鍊使)’로 승격되었다. 하지만 다시 고려 현종 3년인 1012년에 이르러 다시 ‘함양군(含陽郡)’으로 강등되었다. 이때 ‘함(含)’자를 ‘함(咸)’로 바뀌게 되면서 지금의 ‘함양군(咸陽郡)’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고려 명종 2년인 1172년에 다시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조선 태조 4년인 135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다시 ‘함양군’으로 승격되게 된다. 그리고 조선 영조 5년인 1729년에 부로 승격되었다가 조선 정조 12년인 1788년에 도로 군으로 복군이 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또 일설에 의하면 천령군에서 함양군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것이 고려 현종이 아니라 야운 최치원이라고도 하는데,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와 천령군의 태수로 있을 때 천령군이 중국의 함양과 흡사하게 생겼다하여 지명을 함양으로 고쳤다 전한다.

한편 함양군의 신라 때 지명인 ‘속함군(速含郡)’에서 통일신라 이후에 불린 ‘천령군(天嶺郡)’을 이두로 살펴보면 ‘速含郡’의 ‘速’은 대체적으로 ‘쇠’로 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현재 함경남도 문천시에 위치한 ‘속고산(速高山)’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구려시대 전후에 ‘소의달산(所依達山)’으로 불리웠다고 쓰여 있다. 이를 토대로 과거 삼국시대 전후에는 ‘속(速)’과 ‘소의(所依)’를 같은 소리로 표기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소의’는 ‘쇠(鐵)’를 ‘소’+‘ㅢ’ 로 풀어쓴 파자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速含郡’의 신라시대 불리던 지명은 ‘철함군’이 된다. 이는 앞서도 언급했듯이 지리산과 덕유산에 둘러싸여 있는 함양지역의 지리적 특성이 군사적으로 쉽사리 점령하기 힘든 마치 쇠로 된 상자처럼 견고한 지역이라는 의미로 그렇게 불렸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런 유추를 토대로 ‘속함군(速含郡)’을 신라 경덕왕이 ‘천령군(天嶺郡)’으로 바꾼 상황을 살펴보면 ‘철함군’의 ‘철’은 과거 삼국시대 ‘철’은 ‘털’에 좀 더 가까웠다고 한다. 따라서 ‘텰’이라는 소리를 ‘天’의 고대시대 발음인 ‘하늘 텬’으로 보고 ‘天’으로, ‘함(含)’은 고개를 가리키는 한자인 현(峴)·치(峙)·점(岾)·항(項) 등에서 소리가 유사한 ‘항(項)’의 취해서 대표적인 한자인 ‘령(領)’을 취하여 ‘천령군’으로 바꾼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지리산과 남덕유산의 고봉으로 둘러쌓인 함양의 지형을 생각해보면 ‘천령군’, 즉 ‘하늘고개’라는 당시의 지명 뜻과 일면 부합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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