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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땅·눈물의 섬 강화도서 추억 가득고려·조선 도읍 겉목 외적 칩입 잦아

우리나라에서 강화도만큼 외적의 침략을 많이 받은 고장도 흔치 않다. 고려와 조선의 도읍이던 개경과 한양의 길목을 지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던 탓이다. 또한 염하(鹽河)라는 천혜의 자연방어선과 드넓은 농토를 갖고 있어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수십 년간이나 항쟁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염하를 건너온 적들에게 강화성이 함락될 때마다 살육과 약탈의 광풍이 온 섬을 휩쓸었고, 종국에는 무인지경의 폐허로 변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처럼 고난의 역사를 겪었기에 지금도 강화도를 가리켜 ‘역사의 땅, 눈물의 섬’이라 일컫는 것이다.  

   
강화 나들길 제1구간인 강화산성 북문 근처의 성벽을 따라 걷는 여행. 봄 기운이 물씬하다.

역사의 땅인 강화도의 구석구석을 도보로 둘러볼 수 있는 길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생태 탐방로’ 시범사업 구간 중 하나로 선정된 강화 나들길은 현재 7개 구간(총길이 1백17킬로미터)이 개발됐다. 그중 코스 정비가 마무리되어 외지 여행객들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곳은 1~5구간이다. 제6구간(갯벌센터 가는 길)과 제7구간(화남생가 가는 길)도 조만간 정비작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라고 한다.

필자는 지난해 봄에 제2구간(호국 돈대 길), 가을에는 제1구간(심도 역사문화 길)을 섭렵했다. 강화 나들길의 아름다운 풍광과 다양한 역사유적에 매료된 필자는 최근 제1구간을 다시 걸었다. 강화읍내 용흥궁공원을 출발해 강화산성 북문, 연미정 등을 거쳐 갑곶의 강화역사관까지 이어지는 구간이다. 이 길에서는 고려의 임시수도였던 강화도의 특별한 역사와 그윽한 옛 정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총 7개 구간 중 5개 코스 정비 마쳐

심도(沁都)는 강화의 옛 이름이다. 심도 역사문화 길이 시작되는 용흥궁공원 주변에는 용흥궁, 성공회 강화성당, 고려궁지 등의 내력 깊은 문화유적들이 남아 있다. 용흥궁은 강화도령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열아홉 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원래는 초가였으나 철종이 즉위한 뒤에 강화유수가 기와집으로 고쳐 짓고 용흥궁이라 명명했다.  

   
강화도령 철종의 생가인 용흥궁 뒤란에 산수유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궁’이라 불리기에 민망할 정도로 작고 소박한 용흥궁 뒤편에는 백두산 나무로 지었다는 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이 우뚝하다. 전체적으로 배 모양을 띠는 이 건물은 조선의 전통한옥에 서양의 기독교식 건축양식을 절충해서 지어졌다. 그래서 언뜻 보면 영락없는 절간이지만, 내부에는 전형적인 바실리카 양식의 예배 공간을 갖췄다.

초창기 선교사들의 세심한 배려와 토착화 노력이 엿보이는 건물이다. 용흥궁공원 바로 위쪽에는 고려의 궁궐이 자리했던 고려궁지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뒤 39년 동안 사용한 궁궐과 관아가 들어섰던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은 터만 남았다.

고려궁지를 나와 강화산성의 북문으로 가는 길 양쪽에는 벚나무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해마다 4월 중순이 되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려 눈부신 벚꽃터널을 이루곤 한다. 이따금씩 부는 봄바람에 꽃잎이 우수수 흩날리면 아득한 현기증마저 느껴질 만큼 황홀한 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벚나무 가로수길을 10여 분쯤 오르면 강화산성의 북문인 진송루 앞에 당도한다.

몽골군의 침입에 대비해 토성으로 처음 쌓았다는 강화성은 몽골의 강요로 헐리기도 했다. 그러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여러 차례의 개축과 보수공사를 거쳐서 지금과 같은 석성이 남았다. 북문 부근의 성벽 위에서는 한강 하구 건너편의 북녘 땅이 또렷하게 보인다. 그래서 북녘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의 발걸음이 잦다. 
 
   
강화도의 관문이었던 갑곶의 갑곶돈대
강화산성의 성벽 길을 내려서면 아늑한 숲에 들어선다. 강화읍내에서 멀지 않은 숲인데도 호젓하고 한가롭다. 조붓한 숲길을 십여 분쯤 걸으면 오읍약수터가 나온다. 길을 걷는 이에게 약수터만큼 반가운 것이 없다. 시원한 물 한 모금에 목을 축인 뒤 길을 재촉하니 금세 마을길로 접어든다. 마을과 들녘으로 이어지는 나들길의 풍경과 정취는 정겹지만, 끝 모를 시멘트 도로와 아스팔트 도로는 여행자의 발길을 더디게 만든다.

무념무상으로 하염없이 마을길을 걷노라면 어느새 둥그런 성곽이 둘러쳐진 언덕 아래에 닿는다. 그 성곽 안 언덕 위에 우뚝 솟은 돈대가 보인다. 이 작은 돈대 안에 연미정(燕尾亭)이 있다. 서해로 흘러드는 한강과 염하의 물길 형상이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고려 고종 때 처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연미정은 정묘호란 당시 강화로 피난 온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은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1구간 여행… 봄바람 살랑대는 지금이 딱 적기

연미정은 언제나 시원스럽다. 유난히 드세다는 강바람과 바닷바람도 시원스럽고, 강화 10경의 하나라는 연미정의 바다 풍경도 가슴을 뻥 뚫리게 한다. 뻘물과 강물이 뒤섞여 도도히 흐르는 한강 하구의 저편에는 북녘 땅의 산하가 손에 잡힐 듯 또렷하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만한 거리인데도 심리적인 거리는 천리 길보다 더 아득하다. 

   
한강 하구의 나직한 언덕에 자리 잡은 연미정,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연미정에서 제1구간의 종점인 갑곶의 강화역사관(032-930-7077)에 이르는 길은 변화가 별로 없고 밋밋해서 다소 지루하다. 한강 하구와 염하 해안에 설치된 철책을 따라가기도 하고, 내처럼 흐르는 수로와 나란히 이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그늘이 없어서 햇살 따가운 여름철에는 적잖이 고생스러울 성싶다. 그러므로 강화 나들길의 제1구간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는 이맘때쯤에 딱 걷기 좋다.

도시의 골목길, 숲길, 성벽 길, 마을 고샅길, 들길과 물길 등을 두루 거쳐 가는 이 길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인 강화도의 역사를 닮은 듯하다. 그 길에서 강화도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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