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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명이야기 16)
天上天下 唯島海絶景‘남해군(南海郡)’김규봉 (논설위원/지역역사연구가)
김규봉 (논설위원/지역역사연구가)

전국 최고의 명품 해경(海鏡)과 비경(秘境)을 지닌 보물섬 남해군. 태조 이성계의 건국신화를 간직한 금산(金山) 정상 부근에 위치한 보리암(菩提庵)은 국내 최고의 기도처로 이름나 매년 수많은 불자(佛子)들이 찾아와 복을 빌기도. 또한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최후가 서린 노량은 호국(護國)의 성지로 손 꼽혀.  

6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남해군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해안 절경(絶境)을 가진 곳으로 거제도와 함께 한려해상공원의 핵심이다. 따라서 곳곳에 아름다운 해안 풍경을 간직한 곳이 많아 전국 최고의 관광명소로 이름나 있다.

남해군의 근간이 되는 남해도(南海島)는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으로 소백산맥 줄기가 남해안까지 뻗어져서 이뤄져, 망운산(786m), 금산(701m), 송등산(617m) 등 제법 높고 험준한 산들이 섬 곳곳에 솟아있기도 하다.

때문에 산자락이 바다와 직접 접하는 곳이 많아 해안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많으며, 특히 삼남 제일의 명산이자 한려해상국립공원 유일의 산악공원인 금산은 원래 신라 원효대사가 금산에다 보광사를 창건한 탓에 한때 보광산으로 불렸으나, 고려 말에 조선 태조 이성계로 인해 금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와 관련해 전하는 전설에 따르면 태조 이성계가 백두산, 지리산 등 명산에 들어가 산신령에게 왕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마지막으로 금산에 와 빌면서 만약 자신이 왕이 되면 이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 주겠노라고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자신이 산신령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고민했고, 신하 중에 그의 고민을 알고  산의 이름을 ‘비단 금’자에 ‘뫼 산’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고치면 영원히 비단에 싸인 산이 되지 않겠느냐 해서 이를 그럴 듯하게 여긴 이성계가 보광산을 금산으로 고쳐 부르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산의 백미는 바다에서 솟구쳐 오르는 금산의 일출로 3년 동안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할 정도로 새벽 일출이 장엄함과 아름답다.     

또, 남해도에는 100여만 명의 여름 관광객이 찾는 전국 최고 수준의 의 상주해수욕장을 품고 있기도 하다. 반월형을 그리며 펼쳐진 2km에 이르는 상주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덮고 있는 모래는 마치 은가루를 뿌린 듯 부드럽다. 이외에도 남해군에 접해 있는 노량은 충무공 이순신이 자신의 목숨을 불태우며 마지막 전승을 올린 곳으로도 유명하다.

남해군이 처음 역사자료에 등장하는 시기는 통일신라 시대인 신문왕 7년 서기 687년 무렵에 전야산군(轉也山郡)으로 불리기 시작하면서이다. 그 후 경덕왕 16년인 757년에 남해군(南海郡)으로 개칭됐고, 이후 고려 현종 9년인 1018년에는 남해현(南海縣) 불리다가, 다시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에 이웃한 하동(河東)과 병합되면서 하남현(河南縣)이 됐다가, 다시 해양현(海陽縣)이 됐다.

이후 다시 남해현(南海縣)으로 복구되었고, 고종 32년인 1895년에 남해군으로 다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게 된다.

남해군이라는 지명은 이웃한 하동군과 마찬가지로 그 쓰임이 무척 오래되었다. 그리고 지명 유래 역시 하동군과 마찬가지로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중심 방위를 두고 남쪽 바다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여 남해군이라 불렀을 개연성이 크다. 왜냐하면 앞전 지명인‘전야산군(轉也山郡)’과 현재의 남해군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轉也山郡’의 ‘轉’은 그 뜻이 ‘구를’이다. ‘也’는 음차를 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전야산군의 또 다른 이름이‘轉伊山郡’이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살펴보면‘也’=‘伊’이 된다. 따라서 ‘也’=‘伊’=‘이’가 되며, 통상적으로 이두(吏讀)문의 경우 앞이 훈차(訓借)면 뒤는 음차(音借), 앞이 음차면 뒤는 훈차가 된다.

따라서 ‘轉’은 훈차로 ‘구를’로 소리내 발음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따라서 ‘山’은 주로 ‘메(뫼)’이므로, 전야산군의 원래 이름은 ‘구릉잇메(뫼)’정도로 불려졌을 것이다. 지형상 남해군은 수많은 구릉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해수면이 지금보다 6~7m 높았던 삼국시대에는 지금보다 야트막한 구릉이 지네발처럼 펼쳐져 있었을 것이다. 그런 섬의 지형을 보고 구릉이 연결되어 있는 산이란 의미로‘轉也山郡’즉‘구릉잇메’라는 지명이 생겨났을 것이다.

여기서‘也山’은 말 그대로 잇따라 이어진 산 또는 늘어서 있는 산이라는 의미로, 주로 백제지역 또는 백제세력하에 있던 지역에서 종종 보이는 단어이다. 한 예로 논산 지역의 옛 지명인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을 들 수 있겠다.

삼국사기 기록에 의하면 황등야산군은 황산군(黃山郡)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대에 이르러 ‘연산(連山)’이 되는데, 해당 지역 학자들은 황등야산군의 원래 음을 ‘늘어선 뫼’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경덕왕 대에 바뀌는 지명이 ‘黃山’또는‘連山’을 들고 있는데, 두 지명 모두 ‘누런 뫼’,‘늘어선 뫼’로 흡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黃等也山郡’의 ‘잇메(也山)’는 산이 잇닿아 있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쓰는 ‘두메산골’에서 ‘두메’의 반대적 표현으로 여겨지고, 야트막한 산을 뜻하는 ‘야산’의 본래 음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정해 본다.      

한남일보  hannamilbo@hannam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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