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김규봉 칼럼
빈소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한남일보 논설위원 김규봉
한남일보 논설위원 김규봉

식목일이 하루 지난 6일 아침 비가 온다. 세상의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지만 채 피지도 못하고 지는 꽃도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조물주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위해서 만들어 놓았을 꽃이 피지도 못하고 진다는 것은 만든 조물주의 잘못인지, 아니면 활짝 펴서 세상을 빛내야할 운명을 타고 태어난 꽃이 스스로 포기해서 그렇게 된 것인지, 도저히 답을 낼 수 없는 물음에 잔뜩 찌푸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괜스레 내리는 비를 향해 짜증을 내어본다.

지난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에서 최고령자인 이순덕 할머니가 별세하셨다. 이순덕 할머니는 삭풍이 몰아치는 겨우내 지지 않고 피어있는 동백을 닮았다하여 ‘동백꽃 할머니’로 불렸다고 한다. 동백꽃의 그 아름다움이 닮아서가 아니라 추위와 차가운 눈을 견디며 피어있는 동백의 그 의연한 기개를 닮아 그리 불렸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이순덕 할머니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련 증언 활동을 펼쳤을 뿐만이 아니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5년이 넘는 길고도 험난한 법정 투쟁 끝에 1998년 위안부로서는 처음으로 일본 법정으로부터 30만엔 가량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법정에서 일본 정부를 향해 일갈했을 할머니의 기개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에게 마지막 소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소원이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초상날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아와 밥 맛있게 많이 먹고 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소원을 통해 할머니의 인생 여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그리고 자신과 동료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나섰던 일본 정부와의 투쟁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 금새 눈시울이 뜨거워지리만큼 선연히 느껴진다. 하지만 세상은 할머니의 그런 애틋한 마지막 소원마저 허락지 않을 듯했다.

할머니의 영정을 모신 빈소는 말 그대로 썰렁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식을 접한 혹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든 언론들이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 차기 대선에 나선 각 당의 대선주자 심지어 소녀상 문제로 호기롭게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85일 만에 꼬랑지 내리고 찾아든 일본 대사 동향에 초점이 모인 탓에 할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 그리고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이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때문이라 여긴다.

그러나 다행히도 과거와는 달리 이제 사건과 이슈를 국민의 관심과 이어주는 언로(言路)가 언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할머니의 썰렁한 빈소와 마지막 소원을 SNS가 전하기 시작했고, 이에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다들 밥을 맛있게 먹고 돌아갔다고 한다. 그들이 남긴 할머니의 명복을 비는 방명글은 비치된 방명록 2권이 모자랄 정도였다고 한다. 사전 모의에 의해 모인 것이 아닌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 의해 모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해서 모인 학생들 스스로도 자신과 같은 뜻을 가지고 모인 이들의 많음에 놀라워하며 또한 대견해 했을 것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이순덕 할머니는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그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견뎌내고 귀향했다. 그리고 미처 피지도 못하고 영면하셨다. 조물주는 이순덕 할머니에게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청춘을 꽃피울 수 있는 권리를 주셨고, 그 권리를 부여받은 할머니는 마땅히 청춘을 꽃피우며 아름다운 젊은 시절을 보내셔야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우리나라를 강제로 식민지로 삼고, 세계 2차 대전을 일으키고, 그 전쟁의 아수라 속으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을 밀어 넣은 일본의 책임이다. 그러나 일본은 지금껏 그것을 거부하고 은폐한다. 우리 때문이다.

우리가 외면한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를 소녀상 문제를 남의 일처럼 여기는, 부끄러워하는 우리 때문이다. 그런 우리를 과연 일본 정부가 무서워하겠는가? 하지만 일본은 이순덕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 일시에 모여든 청소년을 보고 분명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올곧게 자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봤을 테니까. 

비록 이순덕 할머니의 청춘의 꽃은 일본이 꺾어 피우지 못했지만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제14호실에 차려진 빈소의 영정 사진 속 할머니의 얼굴에는 자신의 소원을 풀어준 숱한 청소년들을 보고 웃음꽃이 활짝 피었을 것이다. 이순덕 할머니, 부디 영면하십시오.  

한남일보  hannamilbo@hannamilbo.com

<저작권자 © 한남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남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