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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무치(厚顔無恥)

우리는 흔히 잘못된 일을 저지르고 난 뒤에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이를 가리켜 후안무치한 자라고 말하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후안무치는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른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중국 유가(儒家) 오경(五經)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하서(夏書)에 전하는 ‘오자지가(五子之歌)’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중국 하(夏)나라 2대 군주인 계(啓)가 사망하자, 자식들 중 맏인 태강(太康)이 왕위에 올랐다. 그런데 태강은 왕위에 오른 뒤에 정사는 돌보지 않고 매일같이 사냥과 놀이에만 빠져 지냈다고 한다. 당연히 왕이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않자 나라의 민심은 흉흉했다.

결국 태강이 낙수 남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무려 100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흉흉한 민심을 등에 업은 유궁씨(有窮氏)의 제후인 예(?)가 반란을 일으켜 태강의 귀환을 막았다고 한다.

졸지에 왕족의 자리에서 내쳐진 태강의 다섯 형제들은 모친과 함께 낙수 북쪽에서 언제 돌아올지 기약이 없는 태강을 기다리다가 그들의 조부인 우(禹) 임금이 남긴 훈계를 노래로 지어 서글프게 불렀다고 한다.

이 노래가 바로 ‘오자지가’이다. 이 ‘오자지가’ 중에서 태강의 막내 동생이 부른 노래 속에 ‘후안무치’의 유래가 들어 있다고 한다.

‘萬姓仇予(만백성이 우리를 원수라 하니, 予將疇依(우린 장차 누굴 의지할꼬), 鬱陶乎予心(답답하고 섧도다. 이 마음), 厚顔有(낯이 뜨거워지고 부끄러워지누나)’

위에서 등장하는 ‘후안(厚顔)’이란 바로 두꺼운 낯가죽 을 한다. 여기에 훗날 사람들이 ‘무치(無恥) ’를 더하여 ‘후안무치(厚顔無恥)’ 라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 한 언론을 통해서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438번지에 위치한 조선 6대왕 단종의 ‘태’가 묻혀 있던 ‘단종태실지(端宗胎室地)’에 경남의 대표적인 친일파 ‘최연국’의 묘가 들어선 사실이 알려졌다. 제72주년 광복절에 즈음해 접하게 된 사실에 경남 도민들 치고 아연실색하지 않은 이 없었으리라.
 
최연국이 누군인가? 경남 사천 출신인 그는 정부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 민족문제연구소가 동시에 친일파로 규정한 인물로,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사천지역에서 집안대대로 부호로 떵떵거리며 살았고, 일제 강점기에는 국방헌금은 물론이고 자신과 아들이 창씨 개명한 사실을 신문에 광고까지 하며 일제에 적극 협력하고 가담한 덕분에 강점기 이전의 자본과 권력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로 또한 떵떵 거리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 그의 피나는 노력(?) 덕분에 1933년에는 마침내 당시 친일파 중 친일파만 받을 수 있었다던 중추원 참의가 된다. 중추원 참의는 당시 친일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물론 중추원은 일제 식민지에 협력한 친일파들이 모인  조선총독부의 자문기관이었다.

이런 최연국도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일본의 패망이다. 그런데 일제에 부역한 죄로 당연히 처단될 줄 알았던 최연국은 운 좋게도 조사를 받던 중에 이승만에 의해 반민특위가 해산되는 바람에 단죄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단죄는 광복 60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정부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파 명단에 동시에 이름을 올리면서 대표적인 친일파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죽은 최연국은 전국 최고의 명당이라 손꼽히는 ‘단종태실지’에 묻혔다. 그의 무덤 앞에는 2미터 가까운 높이의 비석도 세워놨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2미터에 가까운 비석 앞쪽에는 ‘단종태실지’임을 알리는 태비신이 초라하게 세워져 있다.

뒤늦게 사천시에는 ‘단종태실지’를 문화재로 지정하고 안내표지판도 세웠다. 복원은 꿈도 못꾸고 있는 상황이라 한다. ‘단종태실지’의 환수가 무산됐기 때문이다. 당시 친일재산환수조사위원회(조사위)는 2006년 출범 이후, 해당 토지를 국가로 귀속하기 위해 조사를 벌였다.

하지만 문제의 태실지가 최연국 소유로 넘어간 것이 1929년, 최연국이 ‘중추원 참의’ 관직을 받은 게 1933년이란 이유 때문이다. 일제로부터 땅을 불하받은 시점보다 관직을 얻은 시점이 뒤라는 것이다.

당시 조사위 내부적으로도 이런 결정을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대표적인 친일파 최연국을 엄연히 문화재인 ‘단종태실지’에다 묘를 쓴 후손이나 친일재산환수조사위원회(조사위)에서 문제의 ‘단종태실지’를 환수 대상이 아니라고 목에 핏대를 세운 당시 조사위원이나 모두 후안무치하다! 즉, 낯가죽이 두꺼워 뻔뻔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알았다면,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 민족과 나라가 겪어야했던 핍박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알고자했다면 ‘최연국의 묘’는 벌써 ‘단종태실지’의 온전한 모습으로 국민들 품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최연국의 후손들은 ‘후안무치’라는 사자성어의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으려면 친일파 최연국의 묘를 이장하고 나라와 국민에게 ‘단종태실지’를 돌려주어야 마땅하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이 땅을 살아가는 국민이 내리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 앞에 피 눈물 흘릴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한남일보  hannamilbo@hannam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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