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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선지와 늑대한남일보 중부취재본부장 강병국
 
 
한남일보 중부취재본부장

천산(텐산)산맥 자락 키르기스스탄 고원의 도시 탈라스는 고구려 유민 고선지(高仙芝)가 당장(唐將, 당의 장수)이 돼 전투에 참가한 곳으로 유명합니다.

태종 때(628~649년) 중국은 중앙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중국과 중동, 지중해 연안을 연결하는 실크로드를 지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8세기 중국은 힌두쿠시 산맥까지 뻗친 1610㎞ 가량의 지역을 정복했습니다.

750년, 고선지 장군이 이끄는 중국군이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 수도)를 점령하고 투르크인 군주를 처형했습니다. 왕의 아들은 중국군을 몰아내기 위해 아랍 여러 나라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751년 4만여 명의 아랍-투르크 군대(아바스 페르시아)가 중국 영토로 진격해, 탈라스(타라사, 他羅斯) 강에서 고선지의 군대와 맞섰습니다. 주로 보병인 중국군은 페르시아 기병에 허를 찔렸습니다. 4만여 명의 중국군은 겨우 몇 천 명만이 돌아갔다고 하니, 당시 전쟁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퇴각할 때 사람이 사람을 밟고 피투성이가 된 채 달아나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벌어졌고, 피가 강물처럼 흘렀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탈라스 하반(河畔)의 전투에서 완전한 패배를 기록하는 데는 군대를 감찰하는 감군(監軍)이 당 현종에게 고선지 장군에 대한 허위보고를 일삼은 것도 큰 몫을 했다고 후세 사가(史家)들은 전합니다.

아랍인들이 중국인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면서 이슬람은 중앙아시아의 지배적인 종교로 자리 잡게 됐으며, 중국의 중앙아시아 제국 건설의 꿈을 좌절됐습니다. 이 전투 이후 중국 포로들이 사마르칸트에서 강제 노역에 처해, 제지 만드는 기술이 유럽에 전파됐습니다. 전쟁은 문화를 실어 나릅니다.

탈라스에는 베쉬타쉬산이 있습니다. 만년설에서 흘러내리는 설빙수가 쏟아지고, 목동들이 말과 양떼를 풀어 풀을 뜯게 하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풍경은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입니다. 키르기스어로 베쉬는 다섯을 뜻하고, 타쉬는 돌을 의미합니다. 그 옛날 이 곳 산에 다섯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고개를 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도짓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산적인 셈이지요. 마을 사람들은 이를 용인할 수 없었습니다. 청년 수십 명이 이들이 사는 곳을 찾아가 죽인 뒤 그들의 혼을 위로하기 돌 다섯 개를 세워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옵니다.

매사냥은 키르기스스탄의 중요한 문화중의 하나입니다. 이곳에 거주하는 차정식 선생은 매를 풀어 여우와 토기를 사냥하는 모습과 함께 개들의 늑대사냥 행사를 봤다고 했습니다. 사로잡아온 늑대 앞에 개를 풀어 놓았는데 개 다섯 마리가 그대로 땅에 주저앉아 버리더라는 것입니다. 길들여 진 개가 야생의 늑대를 당할 수 없었겠지요. 이곳에서 늑대의 이야기는 일상입니다. 계곡에 놀러 간 사람이 밤늦게 혼자 남아 늑대의 밥이 됐고, 양과 어린 소를 물고 간 것은 예사로 일어납니다.

또 소년이 어린 늑대를 데려와 키웠는데 늑대는 어느 날 집을 나간 뒤 세월이 흘러 소년이 그리워서 인지, 가축을 습격하기 위해서인지 소년의 집에 왔습니다. 하지만 늑대는 야성을 주체할 수 없어 소년을 물어 큰 상처를 입혔다고 했습니다.

한남일보  hannamilbo@hannam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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