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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스(Manas)한남일보 중부취재본부장 강병국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 키르기스스탄 산악지대에 한 목동이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말을 탄 사람들이 지나가다 검은 돌 하나를 목동의 입에 물리면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로 뱉지 말라고 했습니다. 목동은 집에 도착해 돌을 뱉었는데 돌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입에서 마나스 서사시가 줄줄 튀어나왔습니다.

마나스는 중앙아시아 초원의 역사와 사회생활, 전통과 관습, 신앙과 가치관 등에 관한 풍부하고 가치 있는 정보를 담고 있어 ‘키르기스 정신의 정점’이자 ‘키르기스 문화의 백과사전’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철학과 문학, 동식물학, 역사 등 중앙아시아의 모든 문화가 녹아있는 마나스 서사시는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합친 것보다 스무 배가 길고, 인도가 자랑하는 대서사시 마하바라타 보다 두 배 반이나 길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서사시인 셈이지요.

키르기스족의 구술 전통 유산의 백미(白眉)인 마나스 서사시는 이 나라 독립의 아버지 마나스의 일생과 그 자손을 찬양하는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20만 행이 넘는 판본을 모두 소화하는 데는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다 여러 마나스치(manaschi)들이 읊는 서사시가 판본의 내용과 대부분 일치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마치 신(神)들린 사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키르기스스탄 독립의 영웅 마나스 장군은 키르기스인들에게 신적인 존재입니다. 탈라스에 있는 마나스 오르도(마나스 궁전)에는 마나스 장군과 40용사 탑이 있는데 키르기스의 어원은 마나스와 40용사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도 비쉬켁에 있는 공항도 그 이름이 마나스입니다.

사교 모임이나 지역의 축제, 결혼식, 장례식, 추모콘서트 등 공연 시 반주 없이 음송시인 마나스치가 서사시를 읊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비스럽습니다.

해발 3,800m의 거대호숫가 송쿨 대초원에서 유목민의 말달리기 축제에 앞서 펼쳐진 마나스 서사시 공연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습니다. 민속 옷을 입은 소년 마나스치가 전통악기인 세 줄의 금으로 된 코무즈(Komuz) 반주에 맞춰 서사시를 읊는 모습은 몽환적이었습니다.

앞은 대초원이 있고 그 뒤로 비취빛 물을 담은 크나큰 송쿨 호수가 펼쳐진 곳에서 전통복장을 한 마나스치가 대서사시를 읊고, 처녀들이 나와 민속춤을 추며, 목동들은 민속 악기를 연주하는 풍경은 천상의 모습 같았습니다.

키르기스 족들에게 마나스는 문화 정체성의 핵심적인 상징이자 대중오락을 위한 가장 중요한 문화 형태입니다. 또 역사를 보존하고 후세에 지식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하며, 행운을 부르는 중요한 문화 양식이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잦은 외침과 종족전쟁으로 고난을 겪은 키르기스 족들은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이라는 꿈을 쫒아 예니세이 강 상류에서 텐산 산맥과 파미르 지역으로 남하했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고통을 승화해 오면서 대서사시 마나스를 탄생시켰습니다. 그리하여 마나스 대서사시는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이 되었습니다.

 

강병국 기자  bkbk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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