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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끝이 아닌 시작이다.한남일보 논설위원 김규봉

지난 15일 포항 지역에 진도 5.4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한반도에 있었던 역대 지진 중에 작년 경주지진에서 있었던 진도 5.8 규모의 지진 다음으로 강한 지진이었다. 그 여파로 인해 피해 당사자인 포항시민은 물론이고 작년 경주지진의 여파로 인해 지진에 대한 공포감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로 근 1년 만에 다시금 엄청난 진동을 느껴야했던 경주와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지금 현재까지 또 언제 지진이 발생할지 몰라 가슴을 졸이고 있는 형국이다. 덕분에 이제 국민들 누구도 한반도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절실히 깨닫는 계기가 된 것은 부인키 어렵다.
 
그런데 이번 포항 지진의 여파는 포항이나 인근 지역에만 미친 것이 아니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과연 온당한가에 대한 의문 부호를 사회 전반에 던지기도 했고, 또 각 가정에 생존배낭이나 아파트 고층 기피라는 신풍속도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파장은 한반도의 교육시계를 1주일 뒤로 밀어내 버렸다는 것이다. 바로 포항 지진의 여파로 지난 11월 16일 치러지기로 되어 있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1주일 연기되어 23일 치러진 것이다.  
 
지난 1993년에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제도가 도입된 이래 자연재해로 인해 시험이 미뤄진 건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지난 2005년 APEC과 2010년 G20 개최로 인해 연기된 적은 있었다. 대입이 우리 교육시스템의 최종 종착지로 여겨지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대입의 결정판인 수능이 연기된다는 것은 커다란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정부의 결단이었다. 그러나 지난 23일 수능이 끝난 이후 한 방송에서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80%에 이르는 수험생들이 연기 결정을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정부에 의해서 수능이 1주일 뒤로 연기되었다는 발표가 나오기 무섭게 수험생들이 득달같이 뛰어간 곳은 도서관이나 교실이 아니라 엉뚱하게도 쓰레기장이었다. 방송을 타고 보이는 수험생들의 쓰레기장 러시는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곧 기자의 멘트를 통해 그 궁금증은 간단히 풀려버렸다. 수험생들이 쓰레기장을 뒤지는 이유는 자신이 몽땅 버려버린 참고서 등을 되찾기 위해서란다.
 
도대체 왜 이런 촌극이 벌어진 것일까? 왜 수능을 코앞에 둔 고3 학생들이 참고서를 쓰레기장에다가 몽땅 버리는 것일까? 바로 해방감의 또 다른 표현이리라. 자신들이 1년간 공들여 공부한 교과서를 수능 바로 전날 쓰레기장에다 미련 없이 버리는 고3 수험생들은 수능 바로 전날 참고서를 쓰레기장에 모두 버리는 것으로 비로소 고등학교 3년의 생활이 끝났다는 선언을 하는 것으로 풀어내고 싶다. 수많은 이들이 백번 이해하고 백번 공감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 대부분이 고3 시기를 거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우리 교육시스템의 최고 정점은 대학입학에 맞춰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능 전날 쓰레기장에 참고서를 버린 고3 대부분은 고1이 되기 무섭게 수능 시험 일자에 맞춰 공부를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교양과 문화는 사치이고, 꿈을 이루기 위한 목표 설정 따위는 흔쾌히 대입 이후로 미뤄 버렸을 것이다. 덕분에 고등학생들이 가시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최고의 목표는 수능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실에 앉아 꿈을 꾸는 고등학생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그들에게 학교는 거대한 입시학교이고 같아 앉아 공부하는 급우는 좁디 좁은 대입 관문을 통과하는 데에 반드시 제쳐야할 경쟁자로 밖에 인신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고등학생에게 수능이란 비로소 꿈을 꾸고 문화 생활을 즐기며,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탐할 수 있는 시기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수능은 혹독한 겨울을 끝내고 봄이 시작되는 대 전환의 시기인 것이다. 때문에 수능 전날 고3 수험생들이 자신들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열독해 마지않던 수험서를 쓰레기장에다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은 일종의 겨울에서 살아남았다는 기쁨의 표출이고 드디어 자신도 꿈을 꾸고 미래를 위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시기를 부여 받았다는 환호성인 것이다.
 
결국 포항지진으로 인해 수능이 연기된 직후에 우리 고3들을 쓰레기장으로 달려가게 한 것은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낸 인재(人災)인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교육당국은 수능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대한민국 교육의 마침표가 아니라 시스템의 한 과정이라는 것을 가르쳐야한다. 벌써부터 수능이 끝났다는 해방감에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는 고3 학생이 속출하고 있으며, 이는 곧바로 일탈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기나긴 고등학교 생활 중에서 청소년으로서 즐길 수 있는 진정한 시기가 수능 끝부터 졸업 때까지 뿐이라 여기는 탓일 것이다.
 
러시아의 극작가 안톤 체홉은 ‘겨울은 희망이 없는 황량한 계절'이라 표현했다. 그렇다. 겨울은 희망이 없는 황량한 계절이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숨죽여 봄을 기다리며 치열하게 추위와 싸우고 있는지를 보지 못한 한 지식인의 표현일 뿐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교육시스템 중에 고등학교는 한 일부일 뿐이다. 그것이 끝이 아닌 것이다. 고등학교가 끝일 수 없다. 고교 졸업 후 어떤 이는 대학에 어떤 일은 곧장 사회로 뛰어들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과연 수능에 맞춰진 교과과정만으로 사회에 느끼는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까? 교육당국은 우리 청소년들이 고등학교에서 수능 테크닉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에 따른 예비지식과 대학은 그저 사회로 나갔을 때 걸어가야 할 수 많은 길 중 하나라는 점을 가르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주길 소망한다.         

한남일보  hannamilbo@hannam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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