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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선물, 새해김선환 중부취재본부 국장
  • 김선환 중부취재본부 국장
  • 승인 2017.12.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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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환 중부취재본부 국장

낙엽이 보도에 휩쓸려 뒹구는 애잔한 풍경을 볼 때면 문득 또 한해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 달랑 한장 남은 달력에서 지난 시간들이 지워지고 며칠 남지 않은 날짜를 바라보는 이 맘때가 되면 아쉬움이 더욱 절실하게 사무쳐 온다. 온 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차가운 새벽 바람을 가르고 새해 첫날 해맞이에 나서면서 의지를 다지고 소망했던 그 염원들은 망각의 시간 속으로 사라진지 이미 오래이다. 일출을 맞이하는 감성적 순간의 바람만으로는 긍정과 소망의 상실시대를 역류할 수 있는 에너지와 의미를 잡아두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례행사가 돼 버린 ‘새해 소망’의 안타까운 시간들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억겁 속으로 멀어져 갔다.

삶의 경륜을 통해 손에 잡힌 듯, 알 것도 같은 삶의 존재감은 올해도 바람처럼 스러지고 막상 움켜진 것은 고단함이 묻은 빈손 뿐이다. 새해도 아마 그럴 것이다.

인간의 근본적 모순, 이를테면 제어되지 않는 욕망 등에 의한 것도 비루한 삶을 살게 하는 한 원인으로 작용하겠지만, 디지털의 주류문화로 인한 낮설고 생경한 문화의 역습도 분명한 원인이 될 듯하다. 이와 함께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납득하기 어려운 탁류로 흘러가는 세상의 작태도 삶의 정감을 잃어버리게 하는 분명한 이유가 되고 있다.

기존의 가치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상실의 시대는 단세포적인 싸구려 감성과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여진 논리와 주장, 폭력적 말과 행동, 그리고 교묘한 언어의 유희와 소음의 난무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느듯 이 시대의 주류문화로 일상화 된 현실이 씁쓸함을 넘어 잠들지 못해 뒤척이는 방황의 시간 속에 인생을 해매이게 한다.

시간에 대한 정의는 다양한 이론들이 존재하지만 나는 시간을 사회적 물리적 개념으로 이해한다. 시간과 관련된 과학적, 종교적 논거는 넓고 깊은 다양한 논리로 전개되지만 나름대로 시간의 정의를 이치럼 요약하는데 있어 시간의 본질을 흐뜨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는 것은 현대의 약속된 개념으로 인위적인 것이다.

어제의 하루와 오늘의 하루가 자연적 상황에서 보면, 그저 연속성에 의한 것일 뿐, 별다른 개념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결국, 자연적 혹은 주관적 상황에 보면, 새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도 새해였고 오늘도 새해이며, 또 내일도 새해가 되는 셈이다. 결국 동기유발이나 이렇다할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새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추상적 시간만이 일직선상에 놓여있을 뿐.

‘스펜스 존슨’은 자신의 책 ‘선물’에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은 바로 현재의 순간이며 지금이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관심을 쏟고 잡념을 없앤다’는 뜻으로 봤으며 ‘무엇에 관심을 쏟는가에 따라 소중한 선물을 받을 수도,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시간은 고귀한 선물’로 헛되이 써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듯 하다. ‘현재를 살면서 불행하다거나 성공적이지 않다고 느낄 때는 바로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고 과거에서 소중한 교훈을 배워, 그 깨달음을 통해 더 나은 현재를 만든다’면 시간은 분명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지난 시간의 철저한 반성과 교훈, 실천을 통해 지금 이순간부터 끊임없이 노력하고 힘쓸 때, 소망과 염원은 결실을 맺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은 선물이다. ‘진정한 새해는 시간을 잘 쓰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김선환 중부취재본부 국장  kshwil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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