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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학(好學)한남일보 중부취재본부장 강병국

공자는 “열가구의 작은 마을에도 나보다 충실하고 신의 있는 사람이야 있겠지만, 나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好學)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가 공부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찌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두고(志學), 삼십에 설 수 있었으며(而立), 사십에 미혹됨이 없는 경지(不惑)에 도달했을까?

오십에 천명을 알고(知天命), 육십에 귀가 순해졌고(耳順), 칠십에 마음가는대로 행해도 경우에 벗어나는 바가 없게 된 것은 그가 평생을 배우며 살았기 때문이다.

시인 조병화는 사람에게 가장 보람 있고 의미 있는 것으로 독서(공부)와 여행을 꼽았다. 루마니아 출신 첼로의 거장 첼리비다케에게 누군가 “여든 살이 넘어도 연습을 계속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나는 지금도 연습을 하면 내 실력이 는다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춤꾼 박혜경은 “팔을 바로 드는데 15년이 걸렸다.”고 했고, 발레리나 강수진은 “이 정도면 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거기서 끝”이라고 했으며, 프로기사 조치훈은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둔다.”고 했다.

새들은 첫 비행에서 25% 가량은 실패한다. 실패를 딛고 끊임없이 나는 연습을 해야 대자유의 하늘을 맘껏 날 수 있고, 수없이 많이 넘어진 뒤에야 아이들은 일어설 수 있다. 스티븐 호킹이 루게릭병에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고 전 우주를 품을 수 있었던 것도 탐구욕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만해 한용운은 낙엽을 보고도, 한하운은 청 보리에도 배운 사람이다. 안중근은 밤낮없이 배웠기에 동양평화론을 집필할 수 있었으며, 곽재우는 개혁유교를 통해 의병을 일으킬 수 있었다.

간디는 새벽부터 점심때까지 뭔가를 항상 집필했으며, 붓다는 모든 형성된 것은 무너지기 마련이기에 부지런히 공부(정진)하라고 가르쳤다. 불멸의 화가 반 고흐는 생전에 그림 한 점을 팔지 못해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으며, 귀양을 간 뒤에도 추사 김정희는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다산 정약용은 식지 않는 창작열로 후학들의 사표가 되었다.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인(仁)을 단순히 어진 사람으로만 여긴다. 그러나 공부한 사람은 공자께서 그 사람에 맞는 답을 내려 준 것을 알아차린다. 인(仁)에 대해 어떤 제자에게는 “나를 이겨서 예에 이르는 것”이라 했고, 어떤 제자에게는 “내가 하고 싶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라 했으며, 또 다른 제자에게는 “말을 삼가는 것”이라고 했다.
호(好)를 풀이하면 어미(女)가 자식(子)을 끌어안고 있는 형국이다. 호학(好學)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알 수 있다.

붓다와 예수, 공자, 소크라테스의 공통점을 찾는 다면 그것은 누구보다 배우기를 좋아했다는 사실이다.

어느 날 공자는 개울가에 흐르는 물을 보고 말했다. “흘러간다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는 구나”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배워야 사람다워지고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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