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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어업이야기]70. 새우양식향토사학자 김의부
향토사학자 김의부

우리나라에서 새우양식 기업시도는 1963년 신흥냉동의 웅천양식장에서부터였고, 이때의 대상종은 서해안에서 어획되고 있는 대하를 대량종묘생산하여 인공적으로 양식하고자한 시도로서 수산진흥원에 근무하던 김권두씨가 현지에서 인공부화에 성공(미발표)함으로서 양식을 실시하게 됐었다.

그러므로 몇몇 투자가들은 조방적 양식방법을 선택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양식 생산된 대하의 출하가격이 생산비에 미달되는 자연산과 거의 동일한 염가이므로 양식 기업으로 성장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 밖에도 몇몇 기업이 새우양식을 시도하였으나 중단하고 말았다.

정부는 연안증식사업개발에 역점을 두고 1967년 11월 한·일공동조사단을 구성해 전국 연안의 새우양식 적지를 조사하는 등 양식 개발을 서두르게 됐다.

이에 발맞춰 수산진흥원은 수산물중에서도 가장 고가고, 수출품으로서 인기가 좋아 장래성이 있는 새우 양식업의 대어민 보급을 위해 새우종묘생산기술개발에 착수해 1969년 대하의 인공부화에 의한 종묘생산시험을 실시하고 1970년에는 보리새우의 종묘생산에 성공해 새우류의 인공종묘생산이 널리 보급하게 됐으며 1974년도에는 거제도근해산 보리새우의 산란기를 구명했다.

1969년도에 수산청으로부터 시범양식장으로 선정받은 두산산업(주)는 1973년도에 대하양식안정체계를 확림하고 1974년도에는 새우인공배합사료를 개밯하는데 성공했고, 1975년도에는 일본산 모하를 이용한 보리새우 부화에 성공해 1980년도에는 보리새우의 종묘대량생산체계를 확림하게 됐다고 한다.

또한 동사는 1986년도에 인공사료를 개발하는 한편 우리나라 연안의 새우양식 조성을 위하여 1971년도부터 1986년까지 대하 및 보리새우 종묘를 방류했다 한다.

1970년 농어촌개발공사에서는 전남 소록도앞 오마도에서 보리새우 양식을 계획하게 돼 일본에서 1933년부터 인공부화에 성공해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산업화에 성공한 등영원작(藤永元作)박사의 지도하에 치하를 일본에서 수입하여 무투이양식(無投餌養殖 : 소량투이)을 실시했으나 홍수피해와 조방적 관리의불신 등으로 중단됐다.

이 밖에 새우 양식에 참여한 농어촌개발공사 신흥냉동(주), 삼덕양식(주), 아세아물산(주)과 개인 김환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우리나라 새우양식의 개척자로서 그 공로는 길이 새겨져야 할 것이다.

두산산업주식회사에서 새우양식을 시도하던 처음 단계부터 기술개발에는 김진호(金鎭浩 : 양식사업부이사)와 김석용(金錫溶)의 너력이 기여됐다.

거제도에서는 둔덕면 하둔 유강진씨가 대하양식을 1997년부터 하고 있으나 아직 시험생산 단계이며  양식 면허를 받지 않은 상태다

대하새우는 산 것은 담회색이고 꼬리의 끝부분만 담갈색이다. 액각은 거의 수평이고 위쪽에 7~8개, 아랫쪽 3~4개의 극을 갖는다. 크기는 새우류 중에서 대형으로 체장이 270mm 나 된다. 황해 특산으로서 봄에는 근육으로 회유하고 가을이후에는 원육으로 회유한다. 최근에 양식을 하는 어가가 생겨나고 있다.

한남일보  hannamilbo@hannam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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