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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羅州)와 지훈(智熏)강병국/중부본부장
강병국/중부본부장

“천하를 무력으로 다스리려면 장안(長安)에 천도(遷都)하고, 천하를 덕으로 다스리려면 낙양(洛陽)에 천도하라” 나주(羅州)는 들판에 자리하고 있다. 태평시대에 영산강 유역의 강력한 세력이 자미산자락과 드넓은 들에 평화로운 국가나 도시를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나주는 장안 보다 낙양에 가까운 곳으로 김제, 김해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평야로 알려진 배의 고장이다. 인구 11만의 작은 도시지만 국립나주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박물관 인근에 있는 반남고분군(潘南古墳群)은 경북 고령의 지산동고분군, 경남 함안의 말이산고분군과 같은 신비감을 자아내게 한다.

역사의 현장은 언제나 쓸쓸하고 슬픔의 그늘로 가득하다. ‘이긴 자는 무덤이 크고, 살아있어도 약한 자는 코가 작다’고 했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기에 백제의 후예들에 대한 기록은 신라의 그것보다 적고 부족하다. 볼테르는 “역사란 죽은 자들에 대해 산 자들이 구며 낸 거짓말” 이라고 했다.

수더분하고 옛 모습을 잃지 않은 나주는 인근의 광주보다 더 유서 깊은 도시이다. 백제 유물이 출토되고 일본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이 지역의 것과 비슷한 것을 보면 나주는 일본의 본향 같은 천년 고도의 숨결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나주 덕룡산(德龍山) 자락에 있는 성덕사(聖德寺)는 겉모습만 보면 볼품없는 절이다. 절에는 지훈(智熏)이라는 향기 나는 스님이 거처한다. 법당에는 불전함이 없다. 스님 스스로 “불전함은 신도들에게 ‘돈 내라’고 하는 것인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는 스스로 “지은 죄가 수미산을 덮는다.”고 했으며, 사람과 자연과 뭇 생명체로부터 입은 은혜가 한량없어 늘 부끄럽다고 했다. 사월초파일이라도 스스로 등을 다는 일이 없고, 현수막을 내걸어 ‘석가탄신일’을 알리려 하지도 않는다. 달력에 빨갛게 돼 있는 이날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굳이 신도들에게 절에 오라고 말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는 한국 염불선의 거목 청화(淸華)스님과 30대에 불연(佛緣)을 맺은 도륜(道輪)스님을 ‘노장(老杖, 은사스님)이라 했다. 도륜스님은 “하나가 전체인 것을 알고, 전체가 하나인 것만 알면 생명의 본질을 꿰뚫고 생사를 초월하게 된다.”고 가르친 당대의 선승(禪僧)이다.

지훈스님은 한때 장기수 12명과 노숙자 3명을 데리고 있었다. 교도소 교화활동을 하면서 정이 들어 모진 인연을 맺었다. 대책 없는 사람들(?)을 통해 그는 더 많은 수행을 할 수 있었다고 술회했다.

그는 “성직자처럼 사기 치기 좋은 직업은 없다”고 일러주었다. 성덕사는 봉황초등학교 서초분교를 사들여 교실을 법당으로 만들었다. 무엇하나 대단할 것 없지만 법당 옆에 있는 스님의 거처는 도서관을 방불케 할 정도로 책이 가득하다. 그의 취미는 사전(옥편)을 보는 것이다. 사전을 보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이 없기에 그는 9권의 사전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그에게서 ‘원효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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