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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부의 임업이야기]
13. 일본은 한국지배 전부터 삼림문제를 중시했다향토사학자 김의부
향토사학자 김의부

조선왕조의 임제는 14세기 이후의 장기지배에도 불구하고 전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임야대장, 도면은 물론 관민계(官民界), 면적 등의 임정자료조차 존재하지 않아 모든 것은 일본이 설치한  통감부에 기대하지 않으면 안됐다.

통감부치하에 제정된 주요한 삼림법령을 들면 산림에 대해서는 ‘삼림법시행세칙(1908년 4월)’, ‘국유산림산야부분림규칙(1908년 3월 제정 동시 시행)’, ‘국유삼림산야급처분규칙(1908년4월 제정, 5월 시행)’, ‘국유삼림산야급산물처분심사회규칙(1908년 5월 시행)’ 또한 개간지방관에 명해 이용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국유미간지이용법(1907년 7월 제정 9월 시행)’, ‘동법시행규칙(1907년 7월제정)’이 있다. 일본은 한국 지배 당초부터 삼림문제를 중시했다.

통감부의 의사(意思)에 의해 1907년 한국에 처음으로 임업과가 농상공부에 설치됐고, 더구나 다음해인 1908년에 산림국으로 확충됨과 동시에 기본 법률인 ‘삼림법’을 제정해 비로소 한국은 일본식 임야제도로의 첫걸음을 내딛었다.

임야 소유의 봉건적 공유형태로부터 근대적 소유형태로 전환은 기본적으로는 일본과 동일하게 신고주의에 의해 진행됐다. 즉  제19조에 ‘삼림산야의 소유자는 본법 시행일로부터 3개년 이내에 삼림산야의 지적 및 면적의 약도를 첨부해 농상공부대신에게 신고하되 기간 내에 신고하지 아니한 것은 전부 국유로 간주 한다’라고 규정해 일거에 원시적 축적을 강행하고자했다.

삼림법 최대의 목적인 부분림 추진이 임야의 관민유구분의 필요성을 조기에 유발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기사였던 後藤房治의 서술은 “구산림법은 부칙 제19에서 산림산야의 소유자는 동법 시행일로부터 3년 이내에 지적의 신고를 해야한다는 취지를 규정했다. 당국에서는 이 규정에 의해 민간의 신고가 폭주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다. 그렇지만 오랫동안 공산무주(公山無主)의 제도에 익숙해진 일반 민중은 임야의 소유권에 관해서는 하등 감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아 그 후 2년이 지나도 신고를 한 자는 소수에 불과하였기 때문에 정부 당국은 그 주지의 철저에 노력하고 또한 조선의 유식자 계급도 그간에 알선해 겨우 한일합병의 전후에 이르러서야 지적계를 제출하는 자  속출했다” 즉 당초 2년간의 신고자는 매우 적었다. 겨우 기한말기에 증가해 대략 220만 정보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그것조차 ‘사권(私權)’ 의식의 고양보다는 거액의 측량이익을 획득할 수 있는 측량업자의 유도에 힘입은 바 컸던 것 같다. 더구나 신고자도 조선총독부 자료의 한 구절처럼 상위 계층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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