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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 거열성 국가사적 승격에 힘 실렸다통일신라시대 외성 집수지 실체 확인

거창군은 거열성 국가사적 승격을 위해 진행한 거열성 집수지(성내에 식수를 모으기 위한 시설물) 학술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파악되는 외성의 대형 집수지가 확인됐다고 1일 밝혔다.

이번 학술발굴조사는 경남도 기념물 제22호인 거열성(居列城)의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승격을 위해 경남연구원과 진행한 것으로, 거열성 외성 집수지의 축조 시기 및 구조를 밝히기 위해 실시됐다.

거열성은 거창군을 대표 하는 문화유산으로 건흥산(해발 572m) 정상부에 조성돼 있으며, 축조시기를 달리하는 내성(內城)과 외성(外城)으로 구성돼 고대산성의 축성기법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중요 유적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거열성은 둘레 약 1115m로 군내 소재하는 삼국시대 산성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삼국사기’에도 관련기록이 등장한다.

거열성은 백제멸망 후 3년간 백제부흥운동이 전개되다 문무왕 3년인 663년에 신라장군 흠순(欽純)과 천존(天存)에 의해 함락돼 백제부흥운동군 700명이 전사한 역사의 현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내성에 이어져 증축된 외성은 문무왕 13년인 673년 나당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신라가 거점지역인 거열주에 축조한 만흥사산성(萬興寺山城)으로 파악되고 있어, 사적지정을 위한 역사성을 지닌다.

이번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거열성 동쪽 계곡부의 아래에 위치하는 외성 집수지의 전모가 확인됐으며, 대규모의 석축시설과 호안석축(집수지 벽면을 보호하기 위해 할석으로 축조한 구조물), 수거시설(할석을 이용해 만든 물도랑), 출토된 유물을 통해 외성 의 집수지가 7세기 후엽부터 8세기에 걸쳐 사용됐음을 밝혀냈다.

거창군은 거열성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하고 사적으로 승격하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학술조사를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그간의 학술조사와 이번 발굴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내달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거열성의 사적지정을 위해 더욱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손재호 기자  sjh@hannam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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