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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적 근심, 거룩한 근심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인간은 살아가면서 가끔 죄책감을 느낄 때가 있다. 죄책감은 자신이 하나님이나 인간의 도덕적 기준을 어겼음을 알 때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을 말한다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정서적 반응을 「죄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그렇게 불러서는 안된다. 대신에 성경이 그것에 대해 사용하는 용어는 「근심(sorrow)」이다. 고린더 후서 7장 9-11절을 보면 이런 근심을 두 가지 형태로 논의하고 있다. 「내가 지금 기뻐함은 너희로 근심하게 한 까닭이 아니요 도리어 너희가 근심함으로 회개함에 이른 까닭이라 너희가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서 아무 해도 받지 않게 하려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 내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로 보냈던 첫 번 째 편지에서 그들이 행한 여러가지 잘못을 - 그 중에는 계모와 성관계 가졌던 동료 교인에게 관용을 베푼 것이 포함되어 있다. (고전 5 :1-2) - 인해 그들을 꾸짓은 바 있었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은 바울의 편지를 받은 후 거룩한 근심을 갖고 회개하며 반응했고 그 문제를 바로 잡았다. 그러자 바울은 그들을 칭찬하기 위해 긴 편지를 쓰게 되었던 것이다. 죄에 대한 깨달음에는 「거룩한 근심(godly soorrow)」이 수반된다. 거룩한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기에 아주 좋은 것이다. 자비와 용납이라는 특성을 아는 것이다. (롬 2:4) 거룩한 근심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담후 3:16) 그리고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온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검처럼 사용하셔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여 밝히고 우리에게 회개를 촉구하신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것을 죄에 대한 성령의 ’유죄 판결‘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옳지 않다. 성령의 판결은 성도들에게 대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6장 8-9절에서 예수님은 성령에 관련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거나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 성도들 안에서 회개로 이어지는 거룩한 근심을 만들어 내신다. 반대로 「세상적 근심(worldly sorrow)」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는다. 세상적 근심은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자책과 후회의 김정일 뿐, 하나님 앞에서의 느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절망과 죽음으로 이어질 뿐이다. 세상적 근심은 가롯 유다가 자신이 무죄한 피를 흘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느꼈던 감정이다. 그런 감정은 자신의 죄를 지었다는 개달음이며 이때 세상적 근심은 좋은 것이다. 반면 대부분의 세상적 근심은 예수님이 그 죄에 대한 해답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때 세상적 근심은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죄에 대한 참되고 유일한 해답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치명적인 잘못인 것이다. 그러나 「그릇된 죄책(false guilt)」은 다르다. 그릇된 죄책이란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때 경험하는 죄책감이다. 우리는 성경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연구를 통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오류인지를 알려주는 내적 증거를 발굴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율법주의로 인한 기만과 그릇된 죄책을 폭로해 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리스도안에 거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이해를 통해 믿음의 확신을 얻게 될 것이며 우리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그들의 시절에 했던 것처럼 율법주의의 거짓된 기준들과 굳건하게 맞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 본연의 자유를 누리면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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