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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경지를 초월해 살아가자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8월 어느 날,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나팔꽃은 아침 이슬을 머금었고 오동나무 잎사귀는 가을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진실은 어떻게 체득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스승인 조주선사가 이렇게 대답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지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풀솜은 절로 날아다닌다” 선사는 이렇게 눈앞의 풍경을 들어 진리를 말했다. 이와 관련해 어느 시인이 읊은 시(詩) 한 구절이 생각난다. “정해진 시간 속으로 남김없이 돌아가네” 이 시를 읽다 보면 삶의 무상함을 흔히 꽃이 지는 것에 비유하고, 그것을 비바람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꽃은 폈을 때 이미 지는 첫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이다. 지는 원인 자체가 피어남에 내재해 있는 까닭에 비바람은 간접적인 원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 시(詩)는 가르치고 있다. 그렇지만 꽃은 폈으니 반드시 지게 마련이요. 사람도 태어난 이상 반드시 죽게 마련이므로 눈물 한 방울 흘리거나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식으로 초연해지는 듯하는 것도 깨달은 이가 취할 바가 아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은 지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풀솜은 절로 날아 다닌다”는 말을 가슴으로 실감해야 조주선사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 12세기에 살았던 서행(西行)법사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봄바람에 꽃이 날리는 꿈을 꾸면 깨어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 피는 꽃 속에는 이미 지는 필연성을 갖고 있기에 봄바람이 꽃을 지게 한다는 생각이 그릇된 것임을 알고 있지만 ‘두근거린다’라는 이 느낌이야말로 매우 귀중한 것이다. 백운선사의 가르침으로 도를 깨친 여장부가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녀는 사랑하는 딸을 잃었다. 그런데 세상 여느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녀가 크게 소리를 내 울자 같이 수행하던 제자들이 “아직 감정을 다르릴 만큼도 수행하지 못했나?” 하고 비웃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들의 비웃음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비가 오지 않아도 꽃이 지고 바람이 불지 않아도 풀솜이 절로 나는 이치를 깨달았음에도 깨어나도 여전히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슬플 때는 울기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생생하게 살아 흐르는 인간성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인간성을 초월해 눈물을 흘리는 것, 원효(元曉) 대사의 무애행(無碍行)이 이 경지가 아닐까 싶다. 어느 날 한 수행승이 대룡(大龍)선사에게 물었다. “형체가 있는 것은 부서져 버리게 마련인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는 것일까요? (色身敗壞如何是堅固法身)” 대룡선사가 이렇게 말했다. “저 산에 만발한 꽃을 보라. 꼭 비단으로 산을 덮은 것 같지 않으냐? 저 골짜기 가득 차 잔잔하게 흐르는 물을 봐라. 쪽빛으로 물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냐? (山花開似錦 澗水諶如藍)” 그림같이 아름다운 격조 높은 말이다. 산에는 꽃이 펴 비단을 짠 것 같지만 며칠 못 가서 그 꽃은 지고 만다. “사흘 보지 않았더니 진달래꽃이 다 지고 말았다네”라는 말과 같다. “골짜기의 물은 깊어 쪽빛이라네” 산골짜기의 개울물도 끊임없이 차고 흐른다. 산에 핀 꽃과 산골짜기의 개울물 사이에는 빠르고 느린 차이는 있지만 쉴 새 없이 움직여 옮겨 가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옮겨감’이야말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대룡선사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구절은 덧없이 소멸해 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도자기의 매력은 깨지는 데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도자기는 가마에서 나왔을 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부터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깨지기 쉬우므로 근심해서 다루는 동안에 그 소중함을 알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리해 사람들은 거기에서 매력을 느낀다. 지기 쉬운 꽃이라도 무심히 한껏 펴나기에 거기서 진실됨을 느끼는 것이다. 이 구절은 선(禪)의 무상관(無常觀)을 나타낸다. 이 무상관 없이는 좌선(坐禪) 할 수 없다. 이 우주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은 무상해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절실히 느낄 때 비로소 진지한 마음이거나 때로는 좌선을 하게 된다. 그리해 무상의 한복판에 있는 인생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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