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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날지 못하는 새
권우상 명리학자·역사소설가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정사를 전혀 돌보지 않고 사냥놀이와 주색잡기에 빠져 있었다. 3년동안 미녀들의 치마폭에 둘러 싸여 조정에도 나오지 않았다. 충신들이 장왕에게 조정에 나와 올바른 정사를 해 줄 것을 날마다 상주했지만 듣지 않았다. 더구나 매일 신하들이 와서 조정에 나올 것은 상주하자 귀찮아 아예 조문(朝門)에 표찰을 써서 걸어 놓았다. 「앞으로 과인에게 상주하는 자는 가차없이 목을 칠 것이다」그러자 간(諫)하는 신하들의 발길이 끊어지자 장왕은 밤낯으로 미녀들에게 둘러싸여 잔치를 벌이고 풍악을 즐겼다. 오거(伍擧)라는 신하가 장왕의 술판에 나타났다. 장왕은 왼쪽에는 진(秦)나라에서 맞아온 후궁을 안고, 오른쪽에는 월(越)나라에서 온 후궁을 안고 술에 취한 채 희희낙락 하고 있었다. “경은 어찌해 들어 왔는가? 조문에 걸린 글귀를 보지 못했는가?” “보았사옵니다.” “그렇다면 술을 마시고 싶어서 왔는가?” “신은 술을 마시거나 직간하러 온 것이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수수께끼를 들려 드리려고 왔는데 알아 맞춰 보시겠습니까?” “수수께끼라, 그것 참 재미있겠구나!” 오거는 말했다. 어느날 오색 영롱한 큰 새 한 마리가 초나라 언덕에 날아와 높은 소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데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으며 세상을 둘러 보지도 않은 채 앉아만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그 새의 이름은 대붕(大鵬)이다. 3년을 날지 않았으니 언젠가 한 번 날개를 펴서 날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오를 것이고 3년을 울지 않았으니 한 번 울음을 토하면 반드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다.“ 장왕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면서도 못 알아 들은 척 여전히 주색에만 빠져 정사는 돌보지 않았다. 이번에는 대부 소종(蘇從)이 죽기를 작정하고 장왕에게 정사를 돌봐 달라고 간청했다. 장왕은 말했다. ”그대는 조문에 걸린 표찰을 보았겠지?“ ”보다 뿐입니까? 신이 죽더라도 대왕께서 바른 마음으로 돌아오시게만 된다면 기꺼이 죽겠습니다.“ 화가 난 장왕은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았다. ”니 놈이 감히 나를 농락하려 하다니 죽고 싶으면 죽여주마!“ 하고 칼을 번쩍 드는가 싶더니 매달아 놓은 북의 끈을 잘랐다. 장왕은 그 길로 조정에 나가 정사를 보기 시작했다. 그날로 오거와 소종은 높은 벼슬에 등용시켜 정사를 맡기고 그동안 아부만 하던 간신들을 엄벌에 처하고 현자 수백명을 도성으로 불러들여 임무를 맡겼다. 장왕이 3년동안 술과 미녀들의 치마폭에 싸여 정사를 돌보지 않았던 것은 간신과 충신을 구별하기 위해 일부러 꾸민 연극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주연석에서 장왕은 총애하는 허희(許姬)에게 신하들에게 술을 따루게 했다. 허희는 미색이 뛰어나고 자태가 유난히 아름다웠다. 이때 휘익! 한 줄기 바람이 불더니 화등(火燈)이 꺼졌다. 모두 놀라서 웅성거길 때 술을 따르던 허희도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때 한 장수의 억센손이 허희의 허리를 덥석 끌어 안더니 입술을 덥쳤다. 허희는 장수의 품에서 간신히 빠져 나오면서 그 장수의 관(冠) 끈을 떼어내 장왕에게 고해 바쳤다. 왕은 급히 명령을 내렸다. “불을 켜지마라. 과인이 오늘 주연을 연 것은 군신들이 함께 마음껏 즐기기 위함이다. 경들은 모두 관 끈을 떼어내라. 떼어내지 않는 자는 과인과 이 자리에서 즐기는 것을 싫어하는 자일 것이다.” 이는 허희에게 추행한 자가 누구인지 모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후 초나라가 정나라와 싸울 때 선봉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정나라군을 진격해 대승을 거둔 장수에게 장왕이 상을 내리자 장수는 말했다. “신은 대왕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신명을 바쳐 싸운 것이니 따로 상을 내리실 필요가 없으십니다. 지난날 주연을 베풀었을 때 저는 술에 취해 대왕께서 총애하시는 허희를 희롱한바 있었지만 신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시에 신은 죽은 목숨이었으니 대왕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려주셨으니 이보다 큰 은혜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장수의 말에 모든 사람들이 놀랐다. 오늘날에도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면 이와 같은 도량은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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