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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의 고독'고봉진'의 에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1875년에 태어나서 1926년 51세로 사망한 오스트리아 시인이다. 요즘 우리 감각으로는 한 평생을 조급히 살다가 너무 성급하게 떠나버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독일은 물론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의 시를 애송하고 있을 정도로 그는 20세기 독일어권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의 시가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린 흔히 그를 고독한 시인이라고 기억한다. 다음은 「고독」이라는 그의 시다.

고독이란 비와 같은 것
그것은 석양을 향해 바다에서 올라온다
먼 아득한 평야에서
고독은 하늘로 올라 언제나 거기에 머문다. 그리고 하늘에서 처음으로 거리 위로 쏟아진다.
밤과 낮 사이에 비가 되어 내리고
모든 가로들이 새벽녘을 향할 때
아직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두 육체가
실망해서 슬프게 서로를 밀칠 때
그리고 서로 미워하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리고
한 침대에서 어쩔 수 없이 잠들 때
그때 흐르는 강과 함께 흘러 간다….

 릴케가 태어날 때의 오스트리아는 지금의 체코는 물론이고 헝가리까지 판도 내에 품고 있던 대제국이었다. 프라하에서 독일인계 퇴역군인의 외동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원하는 사관으로 자라지 못하고 좌절만 되풀이하면서도 시를 쓰기 시작했다.

백부의 도움으로 1895년 20세에 프라하대학에 입학한 그는 그곳에서 법률학, 문학, 예술사에 대한 공부를 하다가 1896년 뮌헨대학으로 옮겼다. 당시 뮌헨은 독일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다. 그곳에서 릴케는 자기보다 14살이나 연상이며 기혼자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와 운명적인 해후를 하게 된다.

그녀는 일찍이 니체의 구혼도 거절했던 화려한 화제의 주인공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주목 받는 지식인여성이었다. 릴케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거처를 베를린으로 옮기고 베를린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했다.

1899년과 1900년 두 차례에 걸친 그녀와의 러시아 여행을 통하여 그의 시 세계는 커다란 비약을 하게 되고 1905년 『기도시집 Das Stunden-Buch』이라는 이름으로 결실을 보게 되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를 고독하게 했다.

 1900년 릴케는 조각가 클라라 베스토프를 만나 이듬해 1901년 결혼을 하고 그 해 말경 외동딸 루트를 얻는다. 그러나 그때 마침 아버지로부터 생활비송금이 갑자기 단절되었다. 결혼 후 겨우 1년간 유지되어 오던 가족생활이 파탄을 맞게 된 후 릴케가 사망할 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 혼인관계는 해소되지 않았지만 일가가 다시 모여 사는 일은 재현되지 않았다.

 1902년 릴케는 파리로 가서 로댕의 집을 출입하며 그로부터 깊은 감명을 받고 『형상시집 Das Buch der Bilder』을 간행했다. 같은 기간 부인도 로댕에 사사(師事) 했지만 경제적인 곤궁 때문에 부부가 동거생활은 하지 못하고 일요일에만 한번씩 만났다고 전해진다.

 1903년 릴케는 도서관을 다니며 『로댕론』을 집필하였고 로댕의 아틀리에도 들려 그의 작업태도를 지켜보고, 로댕이 돌을 다루듯이 자기도 시를 쓸 때 언어에 의하여 대상을 내측으로부터 형상화해 가겠다고 결심했다. 이것이 바로 그의 「사물시 Dinggedichte」창작의 발단이 되었고 그러한 새로운 시도가 1907년 획기적인 『신시집Neue Gedichte』 발간으로 이어진다.

 그 뒤에도 릴케는 폴 세잔을 만나고, 앙드레 지드를 사귀고, 폴 발레리를 알게 되고, 그의 시집을 번역하는 등 많은 인사들과 교섭을 하고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고독을 느꼈다.

 독일어로 고독(Einsamkeit)은 보통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된다. 하나는 외로움이고 또 하나는 고요함이다. 릴케는 두 가지 경우로 모두 사용했지만 첫 번째 경우의 고독을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했다.

『한 젊은 시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고독을 시인이 시를 창조할 때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마음의 자세로 정의하고 있다. 문학을 지향하고 있는 모든 문필가에게 주는 권고이면서, 릴케 스스로가 자신을 향해서도 행한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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