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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향연, 대만의 수륙재윤소희의 음악과 여행

가오슝(高雄) 포광산(佛光山寺) 수륙법회 첫날, 7개의 외단에서는 각기 맡은 경전들을 송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외단(外壇)에 해당하는 대웅전, 지장전, 관음전, 약사전 등 모든 법당에서는 법기를 두드리며 경을 외우니 온 산이 송경소리로 가득하다. 내단(內壇)으로써, 본 의식을 행하는 운거루는 온 우주에서 왕림하는 손님을 맞이한다. 황금 비단과 붉고 흰 바탕 비단에 수를 놓은 위패며 장식이 그야말로 부잣집 장엄이라 종이꽃과 번(幡)을 쓰는 한국의 재장과는 사뭇 다르다.

약 2000명이 운집한 운거루는 수륙의 핵심 절차가 행해지는데, 말하자면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인 셈이다. 귀한 분들을 모시는 곳이기에 대중은 일제히 장궤하여 금줄을 쳐서 결계(結界)와 정화의식을 행한다. 이어서 초청장을 든 사자(使者)를 말에 태워 불보살을 모시러 보낸다. 흰색·노란색·붉은색·푸른색의 종이로 만든 말 위에는 형형색색의 고깔을 쓴 사자가 타고 천상을 향해 달려간다.

사신들은 단숨에 우주 끝까지 당도해 초청장을 전한다. 이때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아미타불에서 위타(韋馱·사찰 도량을 수호하는 보살)에 이르기까지 가지가지 불호를 노래한다. 사신들이 성신(聖神)들에게 초청장을 전하면 신통력을 지닌 불보살은 일시에 지상으로 내려온다. 불보살이 오는 길에는 하얀 비단 천을 깔았고 사람들은 꽃바구니를 들고 노래하며 비단길 위에 뿌린다. 그것이 산화(散花)의식.  

이어서 먼 길 오시느라고 수고한 손님에게 향과 꽃을 드리운 따뜻한 목욕물을 내고, 성신들이 목욕할 동안 탕 앞에서 찬탄의 노래를 바친다. 그리고는 손님들을 재장(齋場)으로 모셔 들여서는 비단 수를 놓은 자리에 안좌(安坐)토록 한다. 손님을 모셔 들이는 순서를 보면 대통령, 총리, 장관의 순서와 같이 불보살과 성신들의 위격 순으로 모시니 그 순서만 보더라도 중국불교의 사상체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착석한 손님에게는 맛있는 음식과 귀한 선물을 드리니 육법(六法)공양이라. 하나하나의 선물을 올릴 때마다 그에 맞는 찬탄의 노래를 바친다. 이러한 절차는 모두 노래로 진행하는데 장면이 넘어 갈 때마다 나무판 법기와 자바라를 칭칭 친다. 그 효과와 음향은 경극에서 배우들의 등장과 퇴장을 지휘하는 것과도 흡사해 중국스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교향곡 방불케하는 법기의 향연

중국의 불교의례를 보면 의례의 규모가 커질수록 노래하는 부분이 늘어난다. 모든 의례 중에서 가장 장엄한 수륙법회이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부분을 노래로 진행한다. 그러므로 수륙법회에서는 사설조의 노래부터 신도들과 합송하는 느린 해조음류의 찬(讚)이며 빠르고 신명나게 노래하는 고산조, 범음으로 된 진언을 노래하는 화엄자모, 불보살의 이름을 반복하는 염불조 노래에 이르기까지 중국 범패의 모든 종류를 다 들을 수 있는 그야말로 무상(無上)법회이다. 

불보살을 모셔오고 공양을 하느라 사흘이 지났다. 나흘째 날 새벽에는 옥황상제며 천상의 선녀들에게 고사를 지낸다. 이순서는 중국의 민간 신앙을 포용한 것이라 내실인 운거루가 아닌 대웅전 앞의 사찰 마당에서 진행한다. 겉으로는 거나하게 천신들을 대접하지만 불보살과 나란히 응접실에 모시지 않는 점에서 손님의 위격에 차등을 두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섯째 날은 영가들과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고혼들을 불러 법문을 들려주고 계를 내리며 배고픈 영가들을 위해 음식을 대접한다. 이때 차려지는 음식상의 크기가 넓은 마당만 하니 벌렸다 하면 입이 떡 벌어지는 중국 스케일에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이렇게 이틀이 흐른 뒤 일곱째 날은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는 ‘염구의식’을 행한다.  탈 ‘염(焰)’ 자에 입 ‘구(口)’, 번뇌의 불이 타고 있는 지옥 중생이니 이들을 구제하는 의식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영특한 식(識)을 지닌 상단(上壇)의 손님들은 찬탄의 인사만 하면 굳이 번다한 순서가 필요 없지만 어리석은 중생은 노래만으로는 알아먹지를 못하니 특별 수단을 동원한다.

데모하는 학생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듯 사제들은 오방띠를 두르고, 제단에 정렬한 승려들은 방울을 들고 협자를 치며 눈먼 영혼들을 불러들인다. 마치 워낭소리를 듣고 송아지가 어미 소를 따라오라는 듯이 방울을 흔들며 노래하는데 일명 ‘진령게(振鈴偈)’인 셈이다. 

방울 소리도 못 듣는 귀먹은 중생도 있을 터이니 오방띠를 두른 사제들은 손짓까지 하면서 노래를 하는데 그것이 수인(手印)이다. 수십 명에 달하는 승려들이 수인을 하는 것을 보면 마치 무용을 하면서 노래하는 듯하다. 오방띠에 사방으로 정렬한 승려들의 방울소리와 갖은 법기의 향연이 교향곡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모습은 겉으로 보면 화려하지만 실은 아둔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갖은 방법이 다 동원한 것이니 비장하리만치 자비로운 불교의 정신을 느끼게도 된다.

드디어 마지막 날 제 8일째의 송성(送聖)의식은 잔치에 온 손님들을 배웅하는 의식이다. 불보살이며, 옥황상제와 천신들, 역대의 조사들과 성인들과 보통의 영가들과 도깨비와 지옥의 아귀들과 법회에 참석한 현세의 사람들까지 어울려 송별회를 하니 그야말로 우주잔치의 피날레인 셈이다. 수륙이란 그래서 ‘우주’ 혹은 ‘모두’로 번역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가지가지 꽃과 등을 들고 손님들을 보내는 행렬이 시작되면 북치고 나팔 부는 군단을 보려고 몰려드는 사람들로 온 도량이 들썩인다.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들부터 동자들, 고적대, 세계 각국의 사신들, 각 부처의 신도 일동에 이르기까지 장장 몇 시간이 지나도 끝이 없다. 행렬이 용선(龍船)이 대기하고 있는 앞마당으로 모여들면 용선과 의물에 불을 붙인다. 바로 그때 도량 곳곳에서 폭죽을 터뜨리는 사람들이 한바탕 난리를 핀다. 

8일간의 수륙행사 중 마지막 날에만 약 2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였으니 한 달이나 49일간을 한 예전에는 수륙법회를 하면서 국가 재정이 흔들렸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문득 중국이나 대만의 거대한 의례도 문제지만 유생들의 반대와 일본 식민지를 거치면서 바닷가에서 하는 푸닥거리가 돼 버린 한국의 수륙재는 너무도 처참한 문화의 왜곡이자 말살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남일보  hannamil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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